Column 칼럼5-미술품감정
이우환 위작 논란, 실종된 감정 절차가 문제다
2016-07-07 한국경제신문
생존 작가 배제한 위작 발표…작가는 "진품" 혼란 가중
95% 이상 안목감정 우선시…과학분석은 감정 보조수단
작가의 설득력 있는 설명 필수…작가·화랑 작품 DB화해야
최병식 경희대 미술대학 교수
진실게임으로 번진'위작 사건'
‘99점의 위작(僞作)이 진작(眞作)이 되는 한이 있어도 한 점의 진작이 위작으로 감정되는 비극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감정가들 사이에 신조처럼 자리잡은 감정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이우환 위작 논란과 관련, 국내 미술계 전체가 혼돈에 빠져 있다. 이번 위작 논란은 경찰이 위작으로 발표한 이우환 화백(80)의 작품 13점 전체가 작가에 의해 진작으로 감정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어이없는 사건이 됐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역사와 위작의 역사는 동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작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최고가를 기록하는 작가의 작품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문제는 위작을 가려내는 절차와 전문성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2012년 이후 4년간 지속된 논란 속에 경찰 수사로 이어졌으나 이우환 화백 본인의 감정의견이 없이 지난 2일 경찰이 13점 전체에 대해 위작 판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 화학, 디지털 분석 등을 통해 이른바 ‘과학감정’을 한 결과와 다른 단체의 의견을 종합해 심도있는 분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위조범의 자백, 거액의 작품값 일부가 위조 관련자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을 감안하면 경찰의 위작 판정은 타당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품 진위의 결론은 40년 이상 감정 분야에 종사해온 전문가도 감쪽같이 속을 만큼 모호하고 예측불허의 요소들이 작용한다. 이번 논란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가장 기초적 절차인 생존작가 본인을 배제하고 전체를 위작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작가가 진술이 불가할 정도로 와병 중이거나 범죄에 직접 관련이 있을 때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우환 화백이 둘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봤다는 것인가. 참으로 아쉽고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될 절차다.
두 번의 발표와 두 개의 진실
물론 작가 자신의 감정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작가가 실수한 사례가 드물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우선적인 참고사항이 돼야 함은 굳이 외국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기본 상식이다. 이런 절차, 권리와 함께 한편에서 작가감정은 상대적인 의무를 지닌다. 만일 작가가 사실을 왜곡했다면 그의 예술세계를 불문하고 윤리적 차원의 추락을 면치 못한다. 프랑스법에서도 작가와 더불어 상속인에게도 도덕적 권리를 부여한다. 창작자에게는 작품을 인정할 권리와 부정할 권리가 주어지며 이는 재판에서도 단순한 증거 이상으로 존중된다.
신조어 ‘미술품 과학감정’이 주목을 끌었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적용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 화학, 디지털 분석은 당연히 최상의 신뢰도를 지닐 수 있다. 물감 원소성분 분석 결과 아연이 진작에 들어 있으나 의뢰작에는 없다거나, 의뢰작 4점에서는 다른 작품에 없는 유리가루를 발견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좀 더 명확히 표현하면 ‘과학감정’이 아니라 ‘과학분석’이라고 해야 맞으며 훌륭한 보조수단에 해당한다. 고대 도자기를 감정할 때 이런 분석이 매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는 예가 많다.
하지만 작가와 같은 시대에 같은 재료를 사용했거나, 작가가 매우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는 경우 그 정확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예술성, 주요 경향, 채취, 기법, 출처, 서명, 액자, 화제 등을 다양하게 종합해 감정하는 안목감정을 95% 이상 우선시한다.
만일 과학분석을 한다 해도 우선 대상 작품의 표본을 채취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마련하는 등 비교 자료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이우환 화백의 압수 작품만 해도 1970년대 작품이 다수여서 당시의 연대별, 기법별, 제작지별로 객관적이고 다양한 작품 표본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분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2일 경찰은 압수 작품 13점 전체를 위작으로 발표했지만 작가는 2회에 걸친 감정 결과에서 13점 모두를 진품으로 결론지었다. 경찰의 발표를 완전히 뒤집는 파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해소되지 않은 의문사항
이우환 화백은 진작판정의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호흡, 리듬, 채색기법’ 등에서 “물감, 붓 등을 그때그때 다르게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연대가 다른 못의 사용, 질감 및 점과 선의 방향 차이, 캔버스 덧칠 등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생략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관련 자료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물론 당시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사용하는 구체적인 재료를 세세하게 나열하거나 기법, 필법을 일일이 밝히는 것은 위조범들에게 해답을 제시하는 꼴이 되고 작가의 창작권리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초유의 사건이고 미술계 전체의 윤리적 향방을 가르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미술품이 문화자산과 공공재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40년 된 작품들이라서 어려움은 따르겠지만 경찰이 제시한 캔버스에 쓰인 다른 연대의 고정핀(타카), 도장 등 의문사항을 포함한 여러 가지를 좀 더 설득력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향후 작품 DB 구축과 호적 초본 격인 카탈로그 레조네(전작 도록) 작업 등은 당면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작가의 주장이 진실성을 지녔다고 해도 많은 작품이 미궁에 빠지면서 감정불능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사건은 사실상 초기단계에서 생각보다 쉽게 정리될 수 있었다. 작가와 감정단의 의견을 동시에 수용하고 재료 분석을 참고하면서 세심히 비교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기본 절차를 거쳤다면 두 개의 진실게임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25년을 끌어오고 있는 천경자의 ‘미인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경찰과 작가가 독자적으로 발표함으로써 극단적 대립구도만 남은 형국이다.
感情에 치우쳐선 안 돼
사유적 절제미학을 점·선 등으로 표현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사해온 이우환 화백은 백남준 이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소중한 ‘문화국격’을 대표하는 작가와 예술 자원을 어이없는 시스템 실수로 스스로 짓밟는 행위는 결코 반복돼서는 안 된다.
‘감정(鑑定)’이 ‘감정(感情)’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감정사들은 절감한다. 이제라도 근거없는 추단을 절제하고 한 발씩 물러서서 작가, 감정계, 경찰 등 구성원 모두가 합리적인 토론과 자료 연구, 리포트 작성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런던 크리스티 경매 경매시장은 작품가격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한 반 메헤렌 '엠마오의 저녁식사' 1937. 캔버스에 유채. 118x130.5cm.보이만스 반 뵈닝켄 미술관 소장. 베르메르 작품 위작
세계적인 위작 전문가로 유명한 한 반 메헤렌
'플라워 초상화' 1606년 세익스피어의 초상화로 알려졌으나 2004년 런던의 국립초상화갤러리에서 분석한 결과 1818-1840년 정도에 그려진 우작으로 판명. 투시한 결과 바탕에는 성모마리아와 아이의 형상이 나타났다.
중국 따뻔 유화촌의 모작 판매 현장
의재미술관 전경
박수근 작 「빨래터」캔버스에 유채. 37×72cm
2007년 서울옥션에서 45억 2천만원에 낙찰된 작품으로 이후 진위시비에 휘말렸으나 진작으로 판명되었다.
오스트리아 예술사박물관 보존팀의 작품분석 자료
중국 도자기의 감정 봉인
‘빨래터’ 시비가 남긴 교훈
2008. 7. 4. 조선일보.
미술품 감정가들은 “최악의 경우 10여 점의 위작이 진품으로 판정되는 오류를 범할지라도, 단 한 점의 진품이 위작으로 판정되는 불행은 막아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감정가들은 단 한 점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인간이기에 실수할 가능성은 있다. 1%만이라도 진품일 가능성이 있다면 그 진실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위작 시비 때문에 국가적인 문화재가 휴지조각이 될 지경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지난 3일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박수근의 유화 ‘빨래터’를 과학감정 한 결과 진품임이 확실해졌다고 발표했다. 이번 과학감정 결과는 연구소가 지난 1월에 진행한 ‘안목 감정’의 판정 결과를 재확인하고,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한 의미를 띤다. 앞서 ‘빨래터’를 안목 감정한 전문가 20명은 19대 1이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진품 판정을 내렸다.
이번 ‘빨래터’ 논란은 미술품의 진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의 필요성을 미술계에 제기했다.
미술품 감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정 전문가에 의한 ‘실물 분석’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전문가’란 미술품 실물 감정을 직·간접적으로 수백 회 이상 경험한 사람, 으로 이 분야의 권위자를 뜻한다. 미술사, 미술 비평, 화상 등은 미술품 감정과 연계된 분야지만, 엄격히 말하면 완전히 다른 분야인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일부 미술계 인사가 “실물을 보지 않고도 진위 판단이 가능하다”는 말을 한 경우가 있었다. “사진만 보아도 범인인지 아닌지 틀림없이 알 수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로 우매한 발언이다.
특정 미술품이 위작이라고 이의를 제기할 경우, 위작을 진품으로 판정하는 과정보다 오히려 더욱 면밀해야 한다. 그래서 “감정(鑑定)은 감정(感情)이 아니다” 라는 말까지 있다.
지난 1월 미술 전문잡지 ‘아트레이드’의 기사중 ‘빨래터’가 위작으로 의심된다는 내용을 싣기 전에, 과연 이같은 엄정한 절차를 거쳤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감정이란 작품의 스타일 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재료나 기법, 연대, 출처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단서를 찾고 고심하는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특히 ‘빨래터’가 위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앞서서 감정의 A, B, C인 ‘빨래터’ 실물에 대한 분석으로 부터 재료분석 등 기초적인 과정을 꼼꼼히 거쳤더라면 더욱 정확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경매전에는 반드시 예비전시인 프리뷰가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실물감정과정이 불가능했다면 결과적으로 그 의혹은 불완전한 상태이며, 비공개된 형식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단계를 거쳐야 했다.
사실 우리나라 감정 실태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검증된 의견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길은 자유롭게 개방하되, 최소한의 절차를 무시한 ‘아니면 말고’식의 이의 제기는 법적인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차단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미술품 감정가들이 감정서를 발급하면서 동시에 법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고, 실수를 할 경우에 대비해 보험에 들도록 할 필요가 있다. 미술품 감정서를 발급할 때도, 감정 결과에 대해 보다 소상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관련 법률과 판례, 감정 절차, 이의 제기 과정과 범위, 감정 윤리 등을 담은 읽기 쉬운 매뉴얼을 제작해 감정의 폐쇄성을 줄이는 노력 역시 시급하다. 이번 ‘빨래터’ 위작 시비야말로 은근 슬쩍 잊혀지는 ‘미궁’의 사건이 되지 않고, 미술품 감정에 얽힌 다양한 과제들을 해결해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안정적인 미술품감정기구 절실하다
2005. 10. 11. 동아일보
미켈란젤로는 큐피드를 조각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작품으로 속인 바가 있으며, 피카소는 위조품이 맘에 들면 기꺼이 사인하겠다고 하여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중국에서도 모사품은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위작들은 조직화되고, 그 수법이 날로 발전해오면서 이에 대응하여 본격적인 감정시스템이 발달하게 된다. 브라크, 마티스, 자코메티 등 약 200여점의 작품을 유명 기구에 소장할 정도로 세계적인 위조전문가인 존 매트(John Myatt)나 에릭 햅번(Eric Hebborn) 등에 얽힌 위작사례들은 이미 심각한 범죄로 간주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로 대처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에서도 미술품진위에 대한 논란과 시비는 밝혀진 것만 이미 수십 건에 이르고, 수 천점의 위작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판결이나 범인체포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잊혀질만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가짜작품 시비는 그동안 심심치 않게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또 그때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이중섭 작품 진위논란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우리 미술계에는 물론 미술시장, 미술품감정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사안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적지 않은 미술품감정관련 전문가들에게 직접 진위감정을 한 결과를 참작하였다는 점과 이중섭, 박수근 그림 2,740점을 시중유통을 막기 위하여 압수해두었다는 등의 보도는 어떤 사건보다도 공권력이 직, 간접적으로 미술시장에 개입하면서 예방조치까지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전례가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되새겨 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들이 있다. 그 우선은 감정의 중요성 인식이다. 미술시장의 구조에서 감정은 가장 먼저 넘어야 하는 입장권이나 마찬가지여서 결국 중상위권 가격대에서는 필수적으로 신뢰도 있는 감정을 거쳐야 한다. 이 점에서 볼 때 그때 마다 유통경로를 기록하는 자료를 남기거나 작가 역시 작품에 구체적인 흔적을 남겨서 이후에도 자신의 작품임을 증명해야한다.
다음으로는 감정기구, 감정가들의 전문성확보와 절차, 연구기능, 신원보장 등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는 근현대미술 분야 감정전문 인력이 30명 내외이고, 고미술까지 60명 전후이다. 그 중에서도 개별적인 감정이 가능 한 경우는 5-10명 전후로 너무나 열악하며 대우마저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감정단체도 현재 3개가 있으나 2개의 경우는 한국고미술협회, 한국화랑협회의 부설기구로서 독립체계가 아니며, 과거 감정사례의 자료구축이나 연구결과가 완전하지 못하다. 이점에 있어서는 프랑스가 예술품 감정 유럽 조합, 전국 감정인 단체연합 등 20여 개의 기구를 보유하면서 1천여명의 전문가가 각 장르와 시대, 작가별로 전문영역을 감정하고 딜러, 소장자들과의 긴밀한 연계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으며, 미국이 미국감정재단(AF)을 두고 보석이나 토지 등 전 감정분야가 통합된 기구로 윤리강령을 강조하고 교육과 감정원칙을 체계화하는 사례들과 비교될 수 있다.
특히나 과학감정의 경우는 부분적인 형태로만 연계되어있을 뿐이어서 결과를 승복하는 과정에서 보다 명쾌한 답을 제공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 점에서는 1997년 문을 연 이후 18,000회 이상의 테스트를 해온 영국의 옥스퍼드감정회사와 같은 본격적인 기구를 고미술, 근현대를 포괄하여 설립할 필요가 있다.
미술시장의 안전불감증에 경고등이 켜졌다. 지금이라도 갤러리, 경매, 아트페어에서의 신뢰도에 대한 안전장치는 견고하게 구축되어야만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검찰에서도 진위결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있는 자료를 배포함으로서 법과 전문적인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해야 하며, 정부에서도 미술품 감정기구와 전문가에 대한 일정기간 지원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