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칼럼1-뮤지엄

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①

2015. 7. 29. 국민일보

‘문화의 세기’에 접어들어 미술관에 대한 관심은 급증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2014년 관람객수는 230만 명을 기록함으로서 폭발적인 기대와 관심을 보여주었다. 전국의 미술관은 약 170개관을 넘고 있으며, 공립미술관이 50여개이다. 현재도 상당수 지자체에서 설립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인 팽창과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관은 아직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국공립미술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은 결코 일시적인 한계로 인하여 야기된 것이 아니며, 기본적인 구조에서 부터 논의와 담론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1차로 5회의 국민일보 연재를 통해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짚어보고, 다양한 선진외국의 사례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기회를 갖는다.

 

 

글 싣는 순서

① 국립현대미술관,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7.29(수)

② 기업보다 치열한 미술관 마케팅-7.30(목)

③ 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7.31(금)

④ 흔들리는 공공미술관-8.1(토)

⑤ 미래의 미술관을 말한다-8.2(일)

 

 

국립현대미술관,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

 

ㆍ국립현대미술관이 좌표를 잃었다.

 

김윤수, 배순훈, 정형민 관장 재임기간 모두가 난제를 남기고 떠났고, 평가는 답답한 수준이다. 최근 관장 선임에 있어 인사혁신처,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의 늑장인사에 대한 실망도 많았지만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이 없다면 앞으로도 한계는 분명하다. 그간 관장의 전공은 미술사, 미술비평가, 미학자, 심지어는 기업전문가까지 선임이 되었어도 여전히 전문성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2006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되었으나 계속 책임질 일만 발생하고, 경영 실적은 이슈가 없다.

 

ㆍ넘어야 할 산, 법인화

 

새로운 전략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넘어야 할 산은 ‘법인화’이다. 선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우리와 같은 시스템은 없다. 정부가 관장을 공모, 선임하고 현직 공무원이 수 십명씩 미술관에 발령되어 업무를 진행하는 식의 경직된 근대적 방식에서 이제 탈피해야 한다.

 

이번 관장 선임과정에서도 절실하게 느꼈겠지만 정부의 직접 개입은 객관적일 것 같으나 한계가 있고 경직성을 탈피하지 못한다. 담당관 역시 최선을 다한다지만 불과 몇 년을 못 넘기는 인사발령에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국립기관으로서는 기증, 기부 등 재정확보와 마케팅에서도 유연하지 못하며, 지속성 있는 업무연계도 한계가 있다.

 

물론 미술관의 절대가치를 논하면서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본질적인 업무에만 충실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국립이 최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 미술관이 보여준 성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소수의 전시를 제외하고 수준은 기대 이하이며, 미술인을 위한 소통과 연구실적 또한 한계가 분명했다. 특정대학의 편파적인 흐름이 팽배했고, 자립도는 3~5%대 전후를 넘나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는 문체부에서도 이미 2009년에 공청회를 거쳐 그 필요성이 검증되었다. 2011년 국회에 상정하였으나 통과가 안 되고 계류 중에 있다. 물론 법인화에도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 그 성격 자체를 완전히 민영화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기간 동안 정부가 그대로 예산을 지원한다. 그러나 관장의 권한이 강화되고, 이사회를 통한 지원과 견제, 후원 기능이 추가되면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법인화가 이루어진다면 공법인 성격으로서 국립체계와는 달리 미술관의 자율권이 훨씬 더 확대되고 자체적인 인사시스템, 사업기획과 추진이 가능하다. 여기에 경영관장, 혹은 부관장 제도를 도입하고 업무의 전문성, 운영체계를 확립한다면 지금 보다는 훨씬 발전지향적인 시스템을 갖는다. 그러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채, 재정까지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늬만 법인으로 바뀌게 되면 결국 정부는 리모컨을 갖게 되고, 미술관은 문체부 퇴직인사들의 정류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초기 재정은 투자성 예산이 증액되어야 하며, 독립기능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립도 역시 5~10년 정도를 두고 서서히 높여나가는 형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상업자본과 연계된 준 블록버스터 전시가 개최될 가능성이 짙다. 입장료 수익을 위하여 전시, 교육과정에서 강박적으로 대중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ㆍ국립근대, 백남준미술관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단 한 곳의 국립미술관만이 존재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속만 12개이며, 전체 국립박물관을 합치면 민속박물관, 지도, 경찰, 산림 등 40여 개관에 달한다. 정부가 얼마만큼 미술관에 무관심한지를 잘 보여주는 비교치이다.

 

장기적으로는 5-6개의 국립관이 필요하지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1관 체계를 근대미술관, 현대 및 당대미술관 2관으로 분리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사안이다. 우리나라는 근대적 역사의 굴곡만큼이나 정체성이 빈약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고대유물이 있고 막 바로 건너 뛰어 현대미술을 연결해야 하는 우리미술사의 한계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그 이유로 고대, 근대, 현대, 당대를 물 흐르듯이 잇는 역사적 흐름이 단절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열망을 반영하여 현재 덕수궁에서 상당부분 근대미술관 기능을 하고 있으나 기획과 상설전, 수장고, 교육 등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면적이다. 별도의 건물을 신축, 혹은 활용하여 근대미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하여 분관이 진행되고 있는 청주를 비롯한 2개 도시 정도에 분관을 개설하는 방안과 백남준아트센터 같은 기능을 국가가 지원하고 운영해갈 것을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의 작가로서 유일한 백남준에 대한 조명은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형태는 미술관, 소호의 스튜디오, 묘소, 아카이브를 한자리에 묶어 그의 획기적이고, 위트 넘치는 선구적 예술세계를 재조명한다면 그 가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파워를 발휘할 것이다.

ㆍ국립미술관 관장의 자격

법인화된 이후의 관장은 총괄적인 리더의 역할을 하지만 경영부관장, 학예실장이 양축을 형성하고 마케팅, 수집과 전시, 교육업무를 수행해가게 된다. 관장 선임 방식은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다. 개방형과 추천 제도를 동시에 구사하면서 이사회를 통해 결정되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관장 선임위원회’를 발족하여 미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보다 치밀한 검증을 거치는 것도 타당한 방안이다.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이 갖는 당면 과제는 전시와 서비스의 질적인 향상, 법인화와 근대미술관 추진, 과천, 서울, 덕수궁 3관이 갖는 체계 확립이라는 외형적인 변화와 함께 대정부 조율, 내부조직관리와 의식의 재정립, 자립도 향상 등이다. 결국 미술분야의 해박한 지식과 경륜도 중요하지만 행정, 경영전략에 대한 노련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관장이 최상이다. 만능 관장은 불가능하고 규모도 과거와는 달리 대폭 확대되었다. 직제에서 경영부관장과 이사회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이점은 전국의 공공미술관 전체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임기는 현재 2년, 2년, 1년 연장이 가능하여 5년이 지나면 종료되거나 처음부터 응모를 시작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어느 누구도 조직을 리드하기 힘들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소신있는 사업 추진에 한계가 있다. 특히 기업이나 자본가들의 기증과 기부 유도, 외국과의 업무 진행에는 더욱 그러하다. 법인화 이후에는 성과에 따라 최소 10년 정도는 보장해야만 한다.

 

선진 외국에서는 테이트 갤러리나 모마의 장수한 관장 사례 외에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필립 드 몬테벨로 관장이 1977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31년간을 재직하였다. 구겐하임미술관 역시 토마스 크랜스 관장이 1988년부터 2008년까지 20년간을 역임하였고, 워커아트센터의 캐시 할브레이시 관장도 1991년에서 2007년까지 16년간을 역임하다가 모마의 부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임기가 긴 만큼 업적 또한 화려하다. 1988년부터 줄곧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테이트의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은 두 가지 대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하나는 1993년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를 개관했고, 다른 하나는 2000년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하여 오픈한 테이트 모던을 총괄 지휘하면서 그의 출중한 능력을 잘 발휘하였다.

 

최장수 관장인 필립 드 몬테벨로 관장의 업적은 컬렉션 기증유도가 빛난다. 헤인즈 베르구르엔 컬렉션의 파울 클레 작품을 인수하였고, 젝&벨 린스키 컬렉션의 대규모 작품들, 애넌버그 컬렉션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작품, 플로렌 쇤보른 컬렉션 등으로부터 많은 기증을 유도하였다. 루벤스, 베르메르, 반 고흐, 클리포드 스틸, 제스퍼 존스 등의 작품 또한 그의 손에 의하여 소장되었다.

 

또한 전시를 출판물로 이어가는 선구적인 노력으로 연간 30여권이 발간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이탈리아 정부와 그리스, 로마 컬렉션 법적 소유권에 관한 오랜 분쟁을 종료 시키고, 이탈리아에 반환토록 한 후 메트가 장기 대여 하여 전시하는 방식으로 국가 간 난제를 해결하였다. 외에도 한국관을 설립하고, 중국관, 그리스 로마 갤러리를 확장하고 ‘아메리칸 윙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등 지금의 메트 모습을 형성하는데 기틀을 잡은 인물로 평가된다.

 

물론 능력있는 관장을 선임하는 과정도 까다롭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 대표적인 예로 2008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필립 드 몬테벨로 관장이 은퇴를 발표한 후 미술관에서 관장 선임 위원회가 구성되어 1월부터 8개월 후에야 메트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던 토마스 P. 캠벨로 결정되었다.

 

ㆍ왜 전문인재를 양성하지 않는가?

 

며칠 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에 오쿠이 엔위저, 마시밀리아노 조니, 제시카 모건 등에 이어서 마리아 린드 디렉터가 선임되었다. 작년 부산비엔날레의 프랑스 출신 올리비에 케플랭까지 친다면 대표적인 양 전시는 모두 외국인 총감독이다. 물론 학습효과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도가 한참 지나치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문분야 인재양성이 너무나 취약하다. 지원금 한 푼 없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척박한 현실에서 소수의 전문가들은 자력으로 큐레이팅과 미술관학을 터득해왔다. 작가들의 생활고도 말이 아니지만 평론가, 기획자, 학자들의 생활 또한 다름이 없다. 전 세계를 내 집 드나들 듯이 넘나들어야하고, 비영리 연구와 전시의 고통을 겪어내야 하는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로타, 몬테벨로 관장이 그냥 배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 백년이 넘는 문화적 토양이 쌓여지면서 그들도 많은 실수와 실험을 거듭해왔다. 그렇지만, 미술계와 정부에서도 그만큼 전문가 지원과 신뢰를 보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국립현대미술관장을 할 사람이 없다는 정부의 오리무중 인사스태프 보다는 미술관 전문가들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효율적인 인선과정을 마련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미술계 일만이라도 맡기고,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간단한 일부터 시작해야 할 때이다.

 

아무리 제도가 완벽한들, 예산이 풍부한들, 결국은 열정적인 전문가 몇 명의 뜨거운 심장에서 흐르는 파워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②

기업보다 치열한 미술관 마케팅

2015. 7. 30. 국민일보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내에서 차를 내리는 순간 놀라운 가게 한 곳을 만나게 된다. 뉴욕에 있어야 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트숍이 비엔나에 까지 와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갸우뚱 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이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호주,일본, 멕시코, 태국, 싱가포르 등에 15개의 아트숍을 개설하고 미국 국내에도 라과디어 공항, JFK국제공항, 로건 공항 등에 8개소가 있다. 상품 종류도 보석, 시계, 포스터와 판화, 게임에 이르기 까지 장사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망라하고 있다.

 

아직도 빈약하기만 한 아트상품의 수준과 공격적인 마케팅 사례를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너무나 많은 거리가 있다. 선진 여러 나라 미술관들의 상품판매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은 입장료 수입보다 상품 판매가 더 많으며 카페, 식당운영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수입 루트이다.

 

비엔나의 비엔나미술사미술관, 코펜하겐의 루이지애나미술관 카페는 전시장보다도 가고 싶은 곳으로 유명하며, 퐁피두센터는 아예 1층을 거대한 전문서점과 아트상품 코너로 만들었다. 모마는 인터넷으로 작가들의 작품과 콜라보된 상품을 전 세계로 판매하고 있으며, 여러 도시에 국제 라이선스를 체결하여 아트숍을 운영하고 있다.

 

비영리인 미술관의 생존전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서 투자수입, 비즈니스 벤처, 펀드, 부동산 수입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서 거대한 기업의 면모를 방불케 하고 있다. 주식도 투자하고, 목이 좋은 부동산도 구입하여 세를 받아 수익금을 충당한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형태의 자산을 확보하고 있어 미술관내의 수입에 의지하는 비율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기부담당자들은 유명인들의 유증자산을 겨냥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슈퍼리치들에게 보내는 다양한 러브콜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다.

 

ㆍ소장품을 되파는 미술관의 현실

 

우리나라와 같이 국립, 공립, 사립, 대학미술관의 구분이 명확히 된 곳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유는 외국의 대부분이 국공립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관여하는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 관장의 선임부터, 컬렉션과 전시기능 등이 그렇다. 그 대신 미술관도 일정부분 재정을 스스로 책임져야만 한다. 이와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미술관들은 스스로 경영전문가를 고위직으로 채용하여 전방위적인 생존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나 정부에서는 미술관이 문화기반 시설이라는 인식이전에 ‘돈 먹는 하마’라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급등해온 미술품가격 때문에 유명작가의 소장품구입은 자체 예산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며, 몰려드는 관람객에 대한 서비스나 시설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최근에는 세계 경제의 하락으로 전반적으로 지원금이 줄어들고, 기부금 역시 타격을 받게 되면서 미술관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소장품을 되팔겠다는 미술관들이 나타나고 있다.

 

2015년 4월 뉴욕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독일 뮌스터의 베스트팔렌 주립 뮤지엄에 40년간 한 자리에 전시되었던 헨리 무어의 조각 작품과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작품을 판매하기로 결정했으며, 지방정부 컬렉션 중 400여점도 동일한 운명에 처했다. 미국의 델라웨어미술관은 작년 1980만 달러의 빚을 갚기 위해 회화작품 판매결정을 내렸고,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데번 카운티 토르키 뮤지엄의 보조금을 43% 삭감함에 따라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편지와 같은 아이템들을 옥션을 통해 판매하기를 희망하였으며, 크리스티는 이를 적극 받아들여 30만 달러 평가 가격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뉴올리언스 미술관 관장 수잔 테일러는 기관들의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예술품 판매를 도구로 삼는 것은 “뮤지엄이 하지 말아야 할 타협점이며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 주지 못 한다”고 말하는 등 미술관들의 궁여지책을 비난하였다.

 

먼 나라를 말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40개에 달하는 공공미술관 역시 최저한의 연명수준 재정으로 운영되는 예가 적지 않다. 가까운 예로 경기도 산하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등 6개 뮤지엄이 그 예이다. 최근 세수가 줄어들면서 문화재단의 예산이 하락하고 뮤지엄들의 지원금이 급격히 감소되어왔다. 소장품구입이 제로인 상태가 벌써 몇 년째 지속되고 있고 기획전 재정은 거의 최하 수준이다. 급기야 백남준아트센터는 2층 전시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야기했다. 이러한 실상에서 유행하는 말은 ‘비예산 사업’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말이다. 이러다가 우리나라 역시 소장품 재판매 소동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공미술관은 고작 ‘5분의 영광만’ 존재한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화려한 개막식 뒤에는 계획적인 지원과 경영전략이 연계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결국 장식품처럼 현상 유지에만 바쁜 비애를 말하고 있다.

 

ㆍ미술관의 카페는 문을 닫지 않는다

 

미술관의 재정압박은 단순히 이러한 내면적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어려운 것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미술관의 경쟁대상은 단순히 공연장이나 갤러리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제 CGV나 축제, 테마파크, 공연장 등과 경쟁을 통해 관람객을 유치해가야 하는 현실이다. 관람객이 고객이라는 단어로 변화한 지 오래이고 고객의 만족도와 서비스에 따라 관람료, 제반 부대수입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영리공간일수록 많은 예산을 들여 첨단 영상기술과 스크린, 쾌적한 인테리어 디자인개념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는 공무원들의 눈치만 봐야하는 미술관 입장에서 리모델링을 할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공공미술관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인사제도이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담당 공무원, 관장의 인사발령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굳이 공무원만을 지적할 문제가 아니라 관장들 또한 미술관 분야 학문적 연구 실적이 없고, 실전에서 체험한 경우가 드물다. 결국 미술관운영전략, 공무원의 전문성 모두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여기에 현재 우리나라 공공미술관의 인적구성은 학예직과 행정공무원만으로 되어있으며, 경영을 위한 전문가 개입이 없는 이상한 구조이다.

앞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영리와 비영리형 사회 기반시설의 현실적인 격차는 벌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 최우선 대안으로서 충분히 준비된 법인화를 서둘러야 한다. 공무원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독자적인 운영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지원을 하되 간섭은 최소한으로 축소한다는 영국의 ‘팔길이 원칙(The arm’s length principle/ALP)’은 세계적으로 이미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좋은 전시를 기획하려면 그만큼 많은 예산이 수반되고, 명품을 소장하려면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어려운 실정이다. 자립도를 높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장기적으로 수준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하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소통이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최근 관람객수 만을 의식한 전시를 기획하여 질적인 저하를 초래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한 두 번의 이벤트성 전시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성에는 문제가 있으며, 그와 같은 기획방향이 자립도로 직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이사회 등을 두어서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제도적 대안으로 제어가 가능하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영국처럼 아예 미술관이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수익전체를 미술관에 기부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도입할 만하다. 테이트 갤러리의 테이트 엔터프라이스 회사, 테이트 프로젝트 회사, 국립초상화갤러리의 국립초상화갤러리회사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국립박물관연합(Rmn) 역시 정부산하 기구로서 관람료, 아트숍, 카페, 저작권 등을 총괄하면서 수입구조를 일원화하여 전문성을 담보하는 제도도 고려할 만하다.

 

이태원, 명동, 해운대, 샹제리제 거리 등에서 만나게 되는 우리나라 국립미술관 아트숍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공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테이트 갤러리는 문을 닫아도 테이트 갤러리의 카페는 문을 닫지 않는다’. 이 한마디는 오늘날 비영리 성격의 미술관이 처한 절박한 현실과 생존전략을 위한 모든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아트숍

국립중앙박물관 커피숍

뉴욕의 현대미술관 디자인스토어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한 디자인상품으로 유명하다.,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정원」 전시실   경기도문화재단산하 기구로 운영되고 있으나 중앙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지베르니 아트숍  모네의 아틀리에로 유명한 이곳은 줄을 잇는 관람객과 함께 다양한 아트상품을 개발하여 입장료 못지않는 수익창출을 지향하고 있다.

토탈미술관 후원행사   사립미술관으로서는 드믈게 후원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운영예산의 일부를 기부하는 행사를 개최해왔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③

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

2015. 7. 31. 국민일보

 

세기의 미녀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2011년 3월 79세로 세상을 떠나자 그가 남긴 약 6726억원 2만 달러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다음날 새벽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고, 유산 중 일부라도 기부를 받기위한 다양한 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예이지만 서울 인사동의 갤러리 대표 한 분이 워싱턴 스미스소니언과의 인연으로 기부금을 냈더니 하원의장이 나와서 정중히 악수를 하고 예우를 갖추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였다.

 

ㆍ기부에 운명을 걸다

 

‘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설립부터 유수한 미술관들이 기증과 기부로 시작된 것은 대부분이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금 분명한 것은 운영의 승부 역시 키는 ‘기부’에 달려있다. ‘기부의 생활화’를 주창하는 외국 미술관들의 현장은 뮤지엄을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별 희한한 아이디어를 동원한 기부함들이 코너마다 설치되었으며, 3달러나 파운드 정도의 작은 액수를 유도하여 관람객의 도움을 청한다. 기부함 디자인도 다양하여 동전을 집어넣으면 음악소리가 나거나 다양한 장식물을 거쳐 바닥에 떨어지게 함으로써 흥미를 돋운다. 특히나 ‘문화민주주의’를 내걸고 20여개 국립관이 무료로 개방하는 영국의 경우는 더욱 이러한 소액 기부가 활성화 되어있다.

 

이러한 소액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작품 기증은 재산기증과 함께 미술관 수입의 가장 많은 액수를 차지한다. 전 세계 유명 미술관의 명품 소장품 중 약 반 이상이 기증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르세미술관 소장 밀레의 〈만종〉도 그렇지만, 반 고흐만 해도 애넌버그 파운데이션이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한 〈삼나무가 있는 밀밭〉, 릴리 블리스의 유증으로 모마에 기증된 〈별이 빛나는 밤〉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작들이 즐비하다.

 

기증, 기부자들에 대한 예우 또한 소홀하지 않다. 한 계단 오를 때 마다 기부자의 이름을 볼 수 있도록 명패를 부착한 워싱턴의 국립여성미술관도 그렇지만, 전시장마다 기부자의 이름을 새기고, LA카운티미술관처럼 건물 입구에 후원자 명단을 비석으로 세운 예도 많다. 고액기부자들은 이사회의 멤버가 되고,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는데 의결권을 갖게 되며, 조언과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부자들은 다른 어떤 일 보다도 미술관에 기부한 것을 가문대대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테이트 모던 옥상 층에는 기부자들만 갈 수 있는 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후원자들은 자신의 생일파티나 기업의 창립기념 파티를 전시장에서 개최할 수 있는 특권을 갖는 예도 많다. 신소장품을 가장 먼저 감상할 수 있으며, 테이트 브리튼의 새클러 옥타곤(Sackler Octagon)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컬렉션 혹은 특별 전시 중 하나를 비공식적인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350명의 리셉션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저녁 식사는 120명까지 가능하다.

 

이미 선진국의 많은 미술관들은 기부, 기증, 후원에 운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극적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기부금에 따라 5개 그룹의 젊은 컬렉터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후원하기 위한 것이다. 매년 회원들의 지원금 중 일부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영구 컬렉션으로 구매한다. 후원회에서는 역시 5단계의 금액차등이 있고 공지내용에 아예 세금공제금액을 명시한다. 예를 들면 힐라 리베이 후원자 그룹은 가입비 5,000 달러에 세금 공제는 4,311 달러를 한다는 식이며 미술관에서 보답하는 혜택은 13가지 정도를 나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적인 미술관이 탄생하는 데는 국가예산이 투입된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상당부분이 기증과 기부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운영체계도 마찬가지이다. 메트로폴리탄은 2014년도 수입 한화 약 2885억원에서 기부금과 멤버십이 44%인 반면, 뉴욕시의 지원은 10%에 그친다. 스미스소니언 역시 1조 3520억원 규모의 2013년 예산에서 기부가 15.84%를 차지할 정도이다.

 

ㆍ초보적인 기부문화, 한국

 

한국의 미술관의 현실을 진단해보자. 국립현대미술관은 2015년 예산 약 484억원이 국고로 투입되지만 자립도는 여전히 한자리수이다. 전국의 공립, 대학미술관에서도 기증, 기부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적극적인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뿐만이 아니라 미술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전시소식을 받아보는데 매우 제한적이다. 아트숍은 아직도 매력있는 상품을 진열대에 올리는데 초보적인 수준이며, 멤버십은 미약하다. 직원들 중 마케팅이나 기부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은 거의 없고 홈페이지에는 아예 기부, 후원에 대한 언급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최근 긍정적인 사례가 몇 가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들어 기증, 기부가 증가하여 현대자동차, 현대카드, SBS문화재단 등에서 총 20여 억원 정도를 후원으로 유도한 실적이다. 그 중 현대차는 2013년부터 120억을 10년간에 걸쳐 후원함으로써 한국 미술관 역사상 가장 큰 대형기부의 사례를 남겼다.

 

대전의 이응노미술관에서는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소들과 후원협약을 맺고, 매년 1회씩 로비와 야외 공간을 제공하면서 국내외 학회를 개최할 때 파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아트숍 할인 등으로 200만원을 책정하여 받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역시 후원회를 조직하여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기부자의 명단이 없고, 세금혜택을 상세하게 안내하는 자료가 없다.

 

대부분의 미술관에도 기부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기부의 대상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며, ‘국립박물관들은 무료인데 왜 유료로 입장해야 되는가?’하고 강하게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현실 자체가 ‘기부문화’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 매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만큼 노력을 하고 준비를 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더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미술관이 비영리 기구 문화기반시설로서 문화 복지로 이어지는 정신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기본기능에 대한 적극적 홍보가 요구된다. 고액기부가 어렵다고 한다면 1천원부터 시작하는 소액기부를 통해 인식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기부의 대상기관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가장 시급하며, 고액기부자에 대한 지혜로운 예우가 필요하다.

 

아직 우리나라의 공공미술관 전시실에는 개인의 이름이 명시된 곳이 한 곳도 없다.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전시실이나 건물까지도 개인의 이름을 명시할 필요가 있으며, 후원회 정도가 아니라 이사회를 조직하여 기부자 중 역량 있는 분들을 이사로 초빙하고 과감히 세금혜택을 확대하는 등 전폭적인 예우를 준비해야 한다.

 

ㆍ투명한 공개와 연대감 형성

 

기증이나 기부의 조건은 무엇보다 대의와 소명을 우선해야만 가능하다. 그만큼 자선의식이 고양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술관의 질적 수준과 진정성은 가장 중요한 요건이지만 여기에 공공성, 투명한 운영체계, 연대감, 신뢰도 역시 핵심적인 전제조건이다. 세계적으로 유수한 미술관들이 왜 1년간의 모든 사업을 정리하여 100페이지가 넘는 ‘연간보고서’를 발행하는지 바로 그 연유가 여기에 있다.

 

보고서 내용 중에는 연간 예산, 수입과 지출 세부내용, 전시, 교육, 주요 사업 소개와 성과, 관람객 통계, 기증기부자의 모든 명단, 액수, 후원회 종류와 등급별 안내 등을 망라한다. 자신이 마치 미술관의 주주처럼 착각하도록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미술관의 ‘연간보고서’는 찾을 수 없으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만 2년이 지난 2013년도 자료가 게재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실정이니 연간 예산과 사업, 전시, 소장품의 내역 등이 베일에 가려지게 되고 정보공개를 통해 신청해야만 어렵게 가능하다. 투명한 정보공개가 제로라면, 기부는 거리가 멀고, 연대감과 신뢰는 없다.

 

연대감은 세계적인 연예인들의 뮤지엄 기부에서도 잘 나타난다. 2009년에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은 디트로이트의 아주 작은 음악전문 사립 모타운 뮤지엄에 12만5,000달러를 기부하였다. 이 뮤지엄은 스티비 원더를 비롯한 많은 음악인들의 자료를 모아 놓은 곳이다. 최근 네바다 사막의 자연 변화를 담은 거대한 영상설치작품인 존 게라드 작 ‘솔라 리저브’는 환경재단을 직접 운영해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기증에 의하여 LA카운티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었다. 의미를 모를 지드래곤을 주제로 한 서울시립미술관의 ‘피스마이너스원’의 전시가 1만3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④

흔들리는 공공미술관

2015. 8. 1. 국민일보

 

ㆍ작가미술관 파행 건립 심각

 

작가 개인의 이름을 붙인 공공미술관들이 여기저기서 논란이 되고 있다.  대구에서 몇 년간 논란 끝에 결국 무산된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도 그렇지만, 며칠 전 안동시립 하종현미술관은 지역작가들 뿐 아니라 미술계에도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경주시의 박대성미술관은 강력한 반대로 결국 솔거미술관이라는 대안이 제시된 상태이고, 남원에는 김병종생명미술관이 진행 중이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거론, 추진 중인 곳은 경주, 대구, 대전, 인천, 예산, 안동, 제주, 고양, 울진, 태백 등이다. 이외에도 10여 곳에서 거론 중이고, 앞으로 그 수는 점점 더 많아질 듯하다.

 

물론 작고작가 중 미술사적으로 충분히 검증이 된 작가들은 오히려 박수를 칠 일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생존 작가는 어느 정도 수준급 작가이지만 미술관을 짓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적어도 미술관은 미술사의 엄정한 평가를 전제로 하며,작고 후에도 상당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가치와 세계관이 조명된다. 세상은 좀 달라져서 다소간의 변화는 있다고 하지만 그 원칙은 변동이 없다.

 

미술관은 한 나라, 지역의 역사에 남은 작품들을 소장, 전시, 교육하는 곳이며, 나아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이슈를 생산하고, 제시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지자체의 문화 향유와 활성화를 위해서 그러한 작가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이라면 더욱 큰 모순이다.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지는 문화향유는 공공적이어야 한다. 대다수 시·군립미술관 한 곳 없는 곳에 특정작가의 예술세계만으로 전시, 교육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생존 작가 미술관은 국민의 혈세로 한 개인의 기념관을 지어주는 일과 같다. 여기에 미술관의 성격은 항구적이고 공공적, 비영리적이라는 원칙이 있듯이 건립 후에도 언제까지나 적지 않은 운영비를 지자체에서 떠안게 되며, 모두가 지역민들의 피와 땀의 희생을 전제한다.

 

더욱 답답한 것은 상당한 재력이 있는 작가들까지 자립도 10%도 안 되는 지역에 가서 어려운 예산신세를 지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설사 지자체에서 먼저 러브콜을 하는 사례도 있더라도 결국은 작가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군의 미술관예산은 일반적으로 국고 40%, 도비 30%, 시군비 30%로 건립된다. 즉 경상북도나 전라북도에 건립되는 미술관에도 전국의 미술인들이 내는 세금이 투입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논란이 될 작가미술관이 전국에 20여 곳으로 가정한다면 1년 유지비를 5억원 정도만 계산해도 100억원 운영비가 지출되고, 건립비를 1관 당 60억원을 기준해도 12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셈이다. 한국 미술계의 대표적인 지원기구인 아르코 시각예술분야 연간 지원사업에 투입되는 총예산이 40억 원임을 상기한다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막상 건립되면 작품수량도 큰 문제이다. 작가미술관의 경우 1천점을 소장한 사례에서도 매년 개최되는 기획전 작품을 선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을 토로한다. 수 백점의 작품으로는 불과 3~4년도 못가서 한계가 드러나고 만다. 몇 년도 못갈 수준의 콘텐츠로는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대안은 지역의 시군립으로 미술관을 설립하면 된다. 현재도 국립현대미술관 외에 각 지역에 도립, 시립 등 40여개의 공공미술관이 설립되어 있고, 사립미술관도 100여개관이 넘는다. 선별된 작품들을 조건 없이 미술관에 기증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작가 사후에 전문가들의 자연스러운 평가에 의하여 필요하다면 극히 일부만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 순리이다. 

작가들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작업실을 기념공간으로 꾸미는 방법 또한 큰 의미가 있다. 국내에 유일하게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사례는 아산 당림미술관에 있는 이종무 아틀리에이다. 불의의 사고로 서거한 이후 물감 팔레트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우리는 시멘트 건물에 기념관처럼 서있는 차가운 미술관보다는 바로 작가들의 손길과 생각, 실험, 인간미가 묻어있는 현장이 훨씬 더 가슴 뜨거운 체취를 느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ㆍ차라리 블록버스터가 낫지 않을까? 

단기간에 ‘미술의 대중화’를 리드한 공로로는 교과서 못지않게 ‘마르크 샤갈’ ‘반 고흐’ ‘피카소’가 역할을 하였다. 이번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마크 로스코’나 2014년 ‘뭉크’전, 2013년 디자인미술관의 ‘스튜디오 지브리전’ 등은 질적인 수준도 담보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지브리전은 100일간 24만 5천명을 돌파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마크 로스코 역시 추상작가로서 대중성이 낮은 데도 불구하고 만 3개월 만에 14만명을 기록했다. 아홉 번이나 반복관람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깊은 마음의 안식을 얻은 관람객이 많았다. 

미술관 기획전이 한계에 머무르다 보니 그 정도면 블록버스터가 더 낫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많게는 1년에 7개월이나 이어졌던 블록버스터전시를 거부하였고 자체전시로 승부를 걸었다. 미술계의 신선한 결단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관람객은 반으로 격감했다. 기획사들의 대관형식 블록버스터전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우선한다.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미미하거나 삭제되고 미술관의 정체성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중들의 이해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슈를 제기하고 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해가는 등 본질을 다루는 미술관 전시는 한 국가의 문화기반을 다져가는 기초학문과도 같다. 시대의 흐름과 위치, 사상, DNA, 사회적 현상들을 토해내고, 미래로 향하는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박현기전에서 볼 수 있는 아카이브의 힘과 다면성은 전시유형의 새 장을 열어가는 출발점이었다. 지금 전시중인 ‘사물의 소리를 듣다’ ‘무제전’ 등도 의미있는 전시이다. 

 

그냥 설치만 하는 전시, 관객과의 대화가 없고 무조건 감상만 해야 하는 전시, 마음을 열 수 있는 통로와 숲이 없는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의 폭발적인 욕구는 미망에 빠지게 된다. 배후에는 역시 자본이 있다. 기획사들은 상당한 기본 자금을 동원할 수 있어 외국의 명화를 섭외하고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다. 이에 비하여 미술관은 예산이 너무나 열악하다. 전문성과 열정이 있어도 그림의 떡인 셈이다.

 

예술의 전당은 30%만 국가가 지원한다. 결국 70%의 자립도를 보여야만 생존하는 현실이다. 자체 기획전은 엄두를 못 내며 이미 대관전용 전시장처럼 변모했고, 아트페어까지 개최하고 있다. 수천억을 들여도 조성하기 어려운 최상의 장소, 공간 조건을 지니고 있으면서 전시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최근에는 소마미술관이 밀레, 프리다 칼로 등을 개최하기 시작했고,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은 올해 리모델링을 하고 디에고 리베라 전시를 개최하면서 수익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전시립, 전북도립, 제주도립 등 여러 공립들 역시 블록버스터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기업의 재단미술관까지 대중성이 짙은 감각적인 전시로 일관하면서 수 십 만명의 관람객을 유입하였다. 물론 일정부분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노력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난해한 작품들은 전문가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최소한의 원칙과 균형은 중요하다.

 

ㆍ지역예술의 보루이다

 

공공미술관의 난제는 설립목적의 해석에도 숨어있다. 지역예술의 보루로서 고유 업무와 지역이 갖는 특수성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기에 외지인이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임기 동안 소통부재, 성과위주의 사업으로 부딪치는 경우도 많다

 

해답은 지역 그 자체에 있다. 지역미술계의 활성화와 지역문화의 향유권 신장에 그 본연의 임무가 있는 것이다. 세계를 향한 다양한 전략을 구축하고 교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실정은 지역작가들의 기회를 창출하고 역사를 정립해가는 일이 한참 우선한다.

 

지역미술관 홈페이지 어디를 가도 그 지역의 미술사를 읽을 수 있는 아카이브는 없다. 부산시립미술관 정도가 부산지역의 근현대 작품을 상시 전시하는 정도이지만 도록과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사례들은 희귀하다. 일정공간은 언제든지 지역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상설전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유명세는 크게 없지만 평생을 작업과 함께 살다간 작가들의 재조명, 소외되기 쉬운 지역작가들의 창작역량 강화 등은 지역의 공공미술관이 담당해야 할 최우선 의무이다.

 

 

국립미술관이란 중앙정부가, 공립미술관이란 지방정부에서 설립, 운영하는 체계이다. 법인화된 미술관이라 하더라도 그 주체가 정부라면 결국 공공미술관인 셈이다. 엄격히 말하면 재단미술관도 사회 환원이 이루어진 곳으로 공공미술관에 속한다. 열악한 한국미술의 현실에서 공공미술관이 지니는 의미는 지역작가들의 마음이 머무는 집이자 그릇과 같다. 그러나 최근의 모습들은 전문성이 결여되고, 공공성을 무시한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돌출된다.

 

우려의 절정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명칭이다. 이 희대의 명칭은 앞으로도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기부는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ICOM(국제박물관협의회) 헌장의 한 페이지만이라도 넘겨봤더라면 이번과 같은 오류는 없었을 것이다.

작가미술관의 건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단 생존 작가들의 미술관은 법제화를 통해서라도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제한을 서둘러야 한다. 역사에 획을 긋고 간 선배작가들의 사례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미술관 건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대 6대가의 최고봉인 소정 변관식의 묘는 무연고자로 공지되어 이장될 뻔한 것을 미술인들에 의하여 겨우 면했고, 청전 이상범, 유영국, 남관, 권진규, 권영우 등등 작가는 얼마든지 있다. 진정한 고인들은 침묵만 있을 뿐이다.

 

공공미술관의 블록버스터 전시는 정도가 아니다. 다만 ‘착한 블록버스터’는 중소규모의 지역미술관에서 대중화를 위하여 최소 회수만을 개최하는 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기획사에만 의지하지 말고 자체 큐레이팅을 전제해야 한다. 지역에 따라 도심의 심장부에 있는 공공미술관들은 일정부분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 최강의 위치에 있는 기존시설을 활성화하는 것은 굳이 수백억을 들여 신설하는 미술관보다 몇 배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대구미술관 

​양구의 박수근미술관

​창원의 경남도립미술관

​알테 피나코테크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브란트호스트 미술관

퐁피두 센터 국립현대미술관 옥상 정원

뉴욕의 현대미술관 피카소 작 「아비뇽의 여인들」 도슨트 프로그램.

​미술관의 대표적인 컬렉션이다.

퐁피두 센터 국립현대미술관(Centre Pompidou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아트숍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1층 개방형수장고 전시 장면

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⑤

미래의 미술관을 말한다

2015. 8. 2. 국민일보

 

 

“큐레이터를 정의하시오”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 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 잠시 침묵이 있었다.

 

한국의 미술관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불과 20여년 정도이다. 이 상황에서 어느 곳을 봐도 문제는 있다. 그 중에서도 박물관학에 대한 학술적 연구 성과나 큐레이토리얼 스터디는 특히나 미진하다. 미래 미술관의 지평을 열어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난제는 자본과 비순수로부터의 압박이며 타협이다. 큐레이터들이야말로 외부적 요인을 흡인하고 자기언어로 해석하여 사회의 소금으로 거듭나는 마술 아닌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주인공들이다. 세계적인 큐레이터로서 전설과 같은 스위스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해럴드 제만 등도 그들 혼자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교육, 현장, 제도 역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의 공공미술관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몇 백억을 들여 건물을 지을 생각은 하지만 운영할 사람을 기르는 일에는 아예 외면한다. 일정기간 연구 성과를 요하는 기금을 마련하고,학문, 기획, 마케팅 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스터디 과정이 시급하다. 시간이 걸리고, 적중률도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모든 예술은 모두 인간이 창조하고 있지 않은가?

 

ㆍ수장고형 미술관이 시급하다

 

명품을 컬렉션하고 당대 최고의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미술관의 꿈이다. 그러나 작품 한 점에 수억, 수백억원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이러한 생각들이 그야말로 꿈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두 가지 뮤지엄 형식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하나는 수장고형이고 다른 하나는 전시중심이다.

 

수장고형의 특징은 미술관에 소장된 많은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관람객에게 개방하는 형식이다.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불과 몇 %밖에 안 되며, 대부분의 컬렉션은 수장고에서 잠을 자는 형국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 대중에게 보다 쉽고 가깝게 개방하고자 하여 1970년대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인류학 박물관에서 처음 시도되었으며, 스미스소니언, 메트로폴리탄, 매닐 컬렉션, 스위스의 사울라거 미술관, 일본의 가나자와시립 매장문화재 수장센터 등이 주도하였다.

 

현재 컬렉션은 국립현대미술관 1만여 점, 서울시립미술관 4천여 점에 달하고, 수장고에 들어가 보면 시대별, 작가별 주옥같은 작품들이 즐비하다. 특히나 정부미술품을 포함한 아트뱅크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대형 수장고형 미술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주요작가들의 작품을 무상 보관하는 시스템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미술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줄잡아 수 만점의 작품들이 개인 작업실, 주거공간 등에서 사장되거나 손상되고 있다. 엄선을 통해 수준급 작품들을 국가가 무상 보관하고, 작품들을 미술은행의 기능으로 연계할 수 있다. 작품 대여 대상을 학교, 병원 등으로 대폭 확대하여 국민 문화향유의 기회를 창출하는 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형 수장고미술관’이라고 할 만한 이 시스템은 초안을 대폭 확대하여 청주 전매청건물을 활용하는 안이 가장 적격이다. 공립미술관 수십개를 짓는 것보다 저비용으로 대량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안이 될 수 있다.

 

ㆍ전시에 올인하는 ‘살아있는 미술관’

 

전시중심 미술관은 ‘제3의 미술관’ ‘살아있는 미술관’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특징은 소장기능을 최대한 가볍게 하면서 기획중심의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명확히 말하면 미술관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며, ‘대안형 공공 전시공간’쯤으로 해석된다. 당대 실험적인 사조들을 직접 기획, 전시하기 때문에 ‘화이트 박스’로까지 불리는 정형화된 미술관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파격적인 경향과 실험을 바탕으로 한다. 미술관이라는 용어가 다소 근현대적 시대의 의미가 반영되었다고 하면 퍼블릭 갤러리는 철저히 현재 진행형인 당대의 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성격이다.

 

영국의 ‘퍼블릭 갤러리’, 독일의 ‘쿤스트 할레’ ‘쿤스트 페어라인’, 미국의 디아아트 재단에서 운영하는 ‘디아아트센터’가 있다. 영국의 사례로는 서펜타인 갤러리, 발틱, ICA, 캠든 아트센터, 화이트채플 갤러리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 미술계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yBa(young British artists·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의 역할도 컸지만 바로 퍼블릭 갤러리의 역할도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 그 중 서펜타인은 1970년 영국 예술위원회가 설립했다. 런던에서는 테이트 모던의 ‘유니레버후원 터바인 홀전시’와 2000년부터 주최하는 서펜타인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십만은 넘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이 전시는 자하 하디드, 알바로 시자, 렘 쿨하스, 올라퍼 엘리아슨, 프랭크 게리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기획하였다.

 

1974년 설립된 미국의 디아재단의 디아비콘과 디아첼시는 세계 전문가들의 부러움을 사는 곳이다. 다소나마 유사한 기능을 하는 우리나라 기구로는 ‘아르코미술관’이 있다. 최근 들어 1974년 개관된 아르코미술관의 공공적 기능이 미미하다. 전국에 4~5개 정도의 전시중심 공간을 만들고 20여개의 대안공간, 50여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새로운 세대, 파격적인 이념과 현상들을 발굴하고 지원할 때 미래전략은 밝아진다.

 

ㆍ미술관에서 문화민주주의를

 

‘문화 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라는 말이 있다. 영국이 1999년 이후 점진적으로 국립과 대학뮤지엄에 실시한 무료관람제도에 앞서 즐겨 사용한 구호이다. 즉 국민들은 뮤지엄의 소유, 볼 권리, 즐길 권리가 있다는 의미이다. 굳이 어려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유럽의 많은 뮤지엄들이 시민들과 관광객의 안식처가 되고 필수코스가 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오랜 역사와 즐비한 명작을 소장한 화려함도 그렇지만 대중을 위한 섬세하고 파격적인 프로그램의 역할이 가장 크다. 한 가지만 예로 들면 ‘나이트 뮤지엄’이다. 보통은 금, 토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크고 작은 공연, 유료 관람료 할인, 다양한 토크 등을 진행하는데 특별 프로그램은 범 유럽권에서 실시된다.

 

체코 ‘프라하 뮤지엄의 밤’은 6월 하루 동안 오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열린다. 전체 프로젝트는 국립박물관·프라하 공공 운송 회사·체코 뮤지엄 갤러리 협회가 주최하며, 체코 문화부에서 재정을 지원하고, 20만명 이상이 참여한다. 폴란드에서도 ‘박물관의 밤’이 있으며, 프랑스도 하얀 밤이라는 뜻의 ‘뉘 블랑쉬’ 야간 문화 페스티벌이 있다. 페스티벌은 해가 질 때 시작해 동틀 때까지 진행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산타 모니카시에서는 ‘뉘 블랑쉬’에 영감을 받아 부두와 해변에서 백야제를 열었고,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도 ‘뮤지엄의 긴 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미술관 공연이 있다. 그러나 한여름밤 며칠 정도는 밤을 새워서 대화, 공연, 감상 도슨트, 영화상영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미술관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립극장, 오페라단, 음악대학과 협업을 하여 전국의 뮤지엄에서 펼쳐지는 나이트 뮤지엄을 통해 미술인은 물론, 대중들과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평생 작업을 해도 자신의 작품이 단 한번 전시, 소장될 수 없는 작가들이 99%이다. 이러한 기회를 통하여 소통이 가능하다.

 

ㆍ미술관의 마력, 하나가 되는 곳

 

미술관이 일방적으로 작품을 감상, 스터디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언제든지 쉽게 찾을 수 있고, 안식과 함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외부공간을 중점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건물이 압도하지 않으면서 권위의 문턱을 없애는 한편, 실내와 야외를 수평구조로 설계한다.

 

아름다운 미술관 역시 핵심 키워드이다. 최근 아랍에미리트의 사디아트 섬의 뮤지엄 프로젝트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퐁피두센터에 대하여 ‘외관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관광객들의 반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시장에 입장하는 사람 못지않게 앞의 광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기타를 연주하고 춤을 춘다. 국적과 인종, 나이 따위는 의미가 없다. ‘하나가 되는 곳’, 미술관의 마력이다.

 

전원형미술관 역시 보석과 같다.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미국의 게티센터, 프랑스의 마그재단 등 많은 곳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미술관은 건축에서부터 경직된다. 정원개념이 아예 없고 딱딱한 직선 일색에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요즈음 ‘힐링’이 대세이지만 지친 심신을 누일 곳은 미술관만큼 적격인 공간도 없다. 더군다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술사들이 있는 곳이면, 더욱 찾고 싶을 것이다. ‘찾고 싶은 미술관’ 바로 어렵지 않은 미래의 키워드이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