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칼럼3-평론, 에세이
졸속복원은 소실 다음가는 죄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침통함
지난 2월 11일 새벽 숭례문 화재로 지붕 전체가 내려앉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전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는 침통함을 경험을 했다. 현장을 가보면서 믿고 싶지 않은 심경이지만 더욱 복받치는 분통과 죄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원인 규명과 함께 복원을 준비하면서 이성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요즈음 복원을 둘러싸고 다시는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졸속복원은 어찌 보면 소실 다음가는 죄를 짓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적으로 문화재의 복원에는 스타일복원, 비평적 복원, 문헌학적 복원, 과학적복원 등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모든 과정이 수백년을 넘나들면서 이루어지는 역사적 행위라는 점에서 일반 건축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국가마다 다른 복원체계
“일본까지 오실 필요가 없었는데...오히려 한국이 부럽습니다”
몇 해전 일본에 자료조사차 들른 일이 있다. 그 중 하나의 임무는 박물관들의 문화재 보존과 복원에 대한 주제였다. 많은 박물관 복원 책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갑자기 모 박물관 학예실장이 대화 도중 꺼낸 말이다.
이 말은 대화를 나누던 실장의 눈에는 일본의 박물관들이 구사하는 소장품 수복과 보존을 하는 과정이 이상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본의 박물관에서 구사하고 있는 소장품 보존과 수복방식은 국립서양미술관 외에는 자체 박물관직원을 두고 있지 않으며, 모두가 외부의 전문가나 회사에게 맡겨서 복원을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공간만을 제공하고 모든 부분을 외부에서 전담하게 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체계로 운영된다. 물론 양측 다 장단점이 있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인력과 시설의 한계를 극복한다든지, 상시 필요한 업무가 아닌 경우 예산을 절감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보다 치밀한 소장품 관리와 보존을 위해서는 전담인력이 확보되어있어야만 책임감있는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은 여러 박물관에서 공통적으로 쏟아놓는 솔직한 심경이었다.
이러한 점에서는 한국처럼 대규모의 박물관들이 자체적으로 복원전문가를 직원으로 고용하여 관리해가는 것이 더욱 좋은 방식인데 뭐하러 고생만하고 있느냐는 반문이었다.
“아직도 미완성입니까?”
오스트리아 역시 국립박물관에 자체적으로 대규모의 복원팀이 구성되어있다. 비엔나 예술사박물관(Kunst historisches museum)의 미술품복원전문가 엘케 오버탈러(Elke Oberthaler) 수석 연구원의 복원작업실을 들어섰을 때 같이 동행했던 분이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놀라는 모습이 역연하다. “아직도 미완성입니까?” 이젤위에 올려진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의 작품 한 점을 보고 무심결 나온 말에 어느덧 4년이 걸렸다면서 아직도 연구할 곳이 많다는 진지한 설명을 하던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국가주도형인 프랑스는 프랑스박물관복원연구센터(C2RMF)를 두고 퐁피두센터를 제외하고는 국립박물관들의 모든 소장품을 여기서 복원하게 된다. 통합관리인 셈이다.
시스템만으로는 불가능
이처럼 전세계의 박물관 복원시스템이 각기 다르게 운영되듯이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번 숭례문 화재로 잇달아 보도하고 있는 일본의 문화재가 결코 시스템만의 장점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를 지키려는 국민들의 의식, 전문가의 정성과 노력, 세심한 관리행동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물들로 여겨진다. 속절없이 무너지던 숭례문의 뼈아픈 장면을 잊지 말고 이날을 ‘문화재의 날’로 정할필요가 있다. 또한 타다 남은 잔해 한 조각이라도 수습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숭례문 특별전시실을 설치하고 이를 모두 전시함으로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산교육의 장으로 남겨야만 한다.
관리매뉴얼 재작성은 물론, 복원이나마 온 국민의 정성을 모아 소실 다음가는 죄를 짓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2008. 2. 22. 사이언스 타임즈



숭례문 화재현장 2008. 2. 11
미술은행, 국민편에서 생각해야
참으로 오랜만에 한 차원을 달리하는 문화 정책의 기초 안이 발표되었다. 국가가 미술품을 구입하여 싼 값에 대여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그간 예산 부족으로 작품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공공기관들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허덕이는 미술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공청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이 제도는 국고 25억 원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여 이를 공공기관에 임대하고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의 기회를 늘리는 한편 작가들과 미술 시장의 흐름을 지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추구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작품 구입 방법은 공모, 추천, 현장 구입 제도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면서 작가와 미술 시장을 동시에 지원하는 효과를 거두고 질적인 우수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안이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이견도 적지 않다. 즉 작가는 열악한 창작 지원의 형태를 우선해야 하고, 신진작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화랑은 유통 구조의 확립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전업 작가 역시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비추어 보아 청년 작가 지원만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견이다.
미술은행의 목적 또한 은행에 걸맞게 작품을 담보로 한 융자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지방 작가들의 소외, 집행 과정의 철저한 준비 등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이 제도의 시행 목적이 국민 문화 향수권 신장이라는 대전제에 있다. 즉 어떠한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것이지, 건전한 미술시장의 육성 지원이라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국민을 위한 문화 서비스가 가장 우선적으로 감안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적이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도 상당 부분 필요하지만 국민 정서와 기호도를 반영하는 작품들도 다양하게 소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공공기관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작품이 아무리 많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두 번째는 합리적 대화와 조율을 위한 토론 과정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안을 낸다하더라도 제각기 주관적인 발언만을 반복한다면 한계가 있다. 지금쯤은 미술계도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고 경영 전문가들을 배출하면서, 작가나 화상들도 열린 시각으로 관련 행정 시스템 정도는 정확히 이해하려는 거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언제까지나 순수의 시대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전격적인 시행을 하게 되는 미술은행제도는 아직은 시작 단계이고 점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사실상 올 해 25억의 예산으로 약 300여 점의 작품을 구입한다고 보아도 임대 수량이나 미술계의 요구를 다 반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영국이 GAC(Government Art Collection) 등 4개 기관에 2만 여점, 프랑스 7만 여점, 캐나다 1만 8천점, 호주 9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현황과 비교하면 아직 초기 단계일 뿐이다. 정부는 이러한 면을 감안하여 점진적인 지원 확대와 어려운 미술계의 지원을 동시에 해결하는 대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미술계에서도 각 단체나 작가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기 보다는 한 단계 나아가 충분한 토론을 통하여 중지를 모은다면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며, 국내 뿐 아니라 해외 공관 등에도 많은 작품을 전시하여 문화 한국의 이미지를 한 차원 달리하는 과감한 정책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05. 1. 31. 동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