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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리서치

왜 영국미술인가? ‘New Cultural Framework’의 성공과 열기

 

최병식/미술평론가, 경희대 교수

미국을 앞서는 격렬한 열기

  20세기는 거대한 시장의 규모와, 스타급 작가들이 활동하는 주무대로서 뉴욕을 메카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최근 20년 사이에 뉴욕은 런던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장을 받고 있다. 갤러리나 경매회사, 뮤지엄이나 국가적인 지원체계, 스타급 작가들의 보유, 국민들의 관심 등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이제 영국은 독일이나 프랑스를 제치고 무시할 수 없는 세계적 미술 강국으로 급부상하였다.

  영국에서는 약 1,170개의 현대 미술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나 전시장이 있으며, 전체 경매장 수는 754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3-2004년 1년간 세계경매장 판매 통계를 보면 1위는 뉴욕 소더비가 441,244,903파운드(한화 약 8216억 원)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3, 4, 6, 9위는 소더비와 크리스티, 본햄즈 등의 런던경매장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4개 런던 경매장의 거래총액만을 한화로 환산해도 약 1조 원 정도에 이른다.

  미술시장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했을 때 각국의 값어치에 대한 평가가 흥미를 끈다. 미국의 미술시장은 6,395,000,000 파운드(한화 약 11조 9000억 원)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으뜸이고, 유럽에서는 6,840,000,000 파운드(한화 약 12조 7300억 원)로 전체를 합쳐 미국을 다소 앞선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1,980,000,000 파운드(한화 약 3조 6860억 원)로 미국의 4분의 1정도에 해당하고, 영국의 미술시장은 3,467,000,000 파운드(한화 약 6조 4555억 원) 어치의 값어치로 거의 프랑스의 2배가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상업적인 갤러리와 오픈 스튜디오를 통한 미술품 판액에 대한 분석만 계산했을 때 시장 총액이 약 354,500,000 파운드(한화6600억 원 )의 가치를 가진다고 나타났다. 그러나 2005년 상반기에 들어서는 상황이 다르다. 순수미술의 경매 매출액은 미국의 833,000,000달러(한화 8563억 원)에 비해 런던은 854,000,000달러(한화 8779억 원)로 2004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 증가했다. 이러한 결과들은 영국을 세계 시장의 38.2%를 석권하도록 만들었다.

  한편 아트페어의 경우는 영국 내에서만 대형 페어가 200회 정도가 열리고, 5,000회 정도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페어가 개최되면서 애호층들을 충족시키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정부에서 작품을 컬렉션한 기록을 보면,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예술위원회의 컬렉션(Arts Council Collection), 정부 미술품컬렉션(GAC: the Government Art Collection) 등을 합쳐서 모두 27, 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영국은 이렇게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조하기 위하여 1984년 Turner Prize를 시작함으로서 뉴욕 중심의 현대미술이 갖는 한계를 일거에 극복하면서 청년작가들의 충격적이기까지 한 신선한 경향을 창출해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1988년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기획으로 개최된㰡프리즈(Freeze)전㰡‘이후 yBa작가라고 불리는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영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93년부터 초대형 미술관을 계획하여 결국 1억 5천만 파운드(한화 3360억 원)를 투입하고 Tate Modern을 오픈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영국 국민들의 열성적인 미술애호정신과 생활에 가깝게 흡입된 예술의 생활화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 영국국민 성인의 미술관, 갤러리 입장객 수만 1천 35만 9천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22%에 해당된다. 런던의 미술관, 갤러리 입장객 수는 194만 9천명의 인구가 입장하였고, 최근 어느 뮤지엄을 관람하더라도 입장권을 사기 위하여 길게 늘어선 관람자들을 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하여 절대적인 미술가들의 후원자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 ), 앤서니 도페이(Anthony D'Offay) 와 미술시장의 제이 죠플링(Jay Jopling 1963- )과 같은 전문가들의 활약이 총체적으로 맞물리면서 금기와 관념적 타성을 깨뜨리고 㰡Freeze㰡‘즉 결빙이나 응고가 아니라 격렬한 열기와 긴장으로 이어지는 영국미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피의 수혈, Turner Prize와 Freeze

  영국현대미술의 놀라운 성장은 무엇보다도 최근 20여 년간에 걸쳐서 비약적으로 부상한 슈퍼스타들의 등장과 애호층의 확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테이스트 버즈(Taste Buds)의 보고서는 490만 명의 영국 사람들이 이미 예술품을 구입을 했고, 구매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무려 590만 명에 달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 국민의 파워를 바탕으로 yBa작가들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세대로부터 불어 닥친 젊은 피의 수혈은 오늘의 영국미술을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말콤 몰리(Malcolm Morley1931-) 길버트엔 조지(,Gilbert1943- , George1942-) 리차드 롱(Richard Long1945-), 호워드 호드킨(Howard Hodgkin1932-), 토니 크랙(Tony Cragg1949-), 루시앙 프로이드(Lucian Freud1922-),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1954-),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1965-),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1968-) 등 이미 새로운 스타들은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하면서 뉴욕 화단과 세계 각국에서 초대일정을 잡느라 분주하다. 상류 계층에서는 테니스나 축구 이야기에 이어 현대미술에 대한 화제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을 정도이고, 프리다 칼로(Frida Kahlo)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는 테이트 모던은 연일 많은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으며,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이나 런던의 대영박물관 등 전시장은 관광객들을 포함하여 연일 입장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영국미술의 전성시기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상승 붐을 타고 올해도 왕립 예술원의 여름 전시의 경우는 판매되었음을 알리는 빨간 딱지가 70%정도가 넘게 나붙었다. 프리즈 아트 페어(Frieze Art Fair) 역시 순조로운 출발을 하여 이제는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인 바젤이나 여타 정평이 난 아트페어들에는 못 미치지만 신선감과 기획력에서 상당한 가능성과 평가를 받고 있어 세계의 많은 갤러리들이 참가의사를 밝히고 있다. 물론 이 같은 결과가 창출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요인이 동시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대처 정부가 구사한 민간기구들에 대한 정부지원의 축소와 함께 자생적인 경영체계 확립을 유도하면서 문화예술분야의 활성화를 추구한 것이 오히려 문화예술지원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결과로 나타났던 것이다.

 

  영국 현대미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배경에 잠재된 요인들을 정리해보면 첫째로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를 들 수 있다. 이 수상 제도는 50세 이하로서 영국 내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한 작가에게 2만 파운드를 수여하며 4-5명 정도의 1차 노미네이트전을 1개월 정도 거쳐 연말에 최종 1명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수상제도는 영국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독자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는 의미와 함께 급격한 의식의 전환과 함께 트렌스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줄곧 모색되어온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적절한 지원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84년에 처음 개최된 터너 프라이즈는 무엇보다도 뉴욕 위주의 현대미술과 프랑스 위주의 근대미술에 대한 영국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영국의 위상을 선언하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시작되는 단계에서는 제 1회 최종 수상자가 말콤 몰리에게 돌아가면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테이트 갤러리의 적극적인 지원과 차별화된 젊은 작가들의 과감한 발탁, 1991년 이후 채널4에 이어서 가디언(Guardian)지와의 협력관계를 형성하면서 채널4에서는 2003년부터 시상식 중개 방송까지 이어지는 등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나 가디언지에서는 특별 리포트로 터너 프라이즈의 20년간 수상자들과 노미네니트된 작가들에 대한 작품들을 언제든지 검색할 수 있으며, 해당 작가들의 관련기사들을 한 곳에 모아서 쉽게 접하도록 하고 있어서 순수예술에 대한 언론사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터너 프라이즈는 순수예술과 지원제도, 딜러, 미디어가 입체적으로 만들어낸 복합적인 작품으로서 비록 영국의 국내에 제한된 전시체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뉴욕 위주로 흘러온 현대미술의 편향적인 흐름을 넘어서서 영국이 주도하는 첨단 현대미술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지표가 되고 있다.

 

  이미 20년이 넘은 이 수상제도는 일부의 비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도 최우선적인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도 수상 결과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20여 년간 영국현대미술이 성장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나 이 제도는 언급한 바와 같이 작품들의 도발적이기까지 한 창의성도 관심을 집중시키지만, 수상 과정과 결과를 미디어를 통해 공개하는 등 소통체계의 다중코드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었다. 또한 난수표, 교란자와 같은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넘어서서 애호가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는 정도로 공격적이면서도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였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알려진 바와 같이 yBa의 출발은 허름한 선창가 공장지대인 도클랜드(Docklands)에서 개최된 1988년 '프리즈'였으며, 작가들은 모두가 런던 골드스미스대학(Goldsmiths College) 학생 16명으로 구성되었다. 데미언 허스트, 게리 흄Gary Hume(1962-), 미카엘 랜디(Michael Landy1963-), 사라 루카스(Sarah Lucas1962-), 피오나 래(Fiona Rae1963-) 등이며 이들을 일컬어 yBa작가라 한다.

전시 큐레이터는 이들 중 한 명인 데미언 허스트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독특했다. 물론 작품마다의 독설적이고 극단적인 페이소스가 갖는 감각적 자극을 통한 표현방법 역시 상당한 충격이었지만, 작가가 직접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과 공장지대의 넓은 공간을 잡아 독자적인 스페이스를 확보하고 적지 않은 관객을 불러들이는 식의 공간 이동을 통한 프로젝트 화 된 전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기획은 다중코드로서 고도의 문화적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재료나 형식에 있어서도 상당 부분이 관념적인 난해함보다는 즉발적인 내용을 담은 사회적 이슈, 충격적인 자아정체성 들여다보기, 평상시에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엽기적이기까지 한 소재들을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쉽고도 적나라한 즉물적 리얼리티를 구사하게 된다.

 

  이들은 진지한 개념적 현상을 작품에 증폭시키고 있었고, 이 같은 개념현상이 평범한 생활의 한 복판에 다가서고 있음을 예지하도록 가공하는 홍보 전략과 대담하고도 솔직한 심리적 다중코드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는 과거의 작가들이 창작에만 매달리면서 그 외의 영역을 해당전문가에게 의뢰해버리는 형식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쩌면 사회적 소통체계나 그 결과까지도 작업의 일부로 여기는 학생들의 진지함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이들의 도발적인 프로젝트는 작품 자체에서도 충격적인 매체나 내용으로 관람객들의 폐부를 자극하는 요소로 유명해졌지만 그 환경적 요소들을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도 기존의 경직된 시스템을 무시하고 보다 자유롭고 보다 유연한 프로그램을 창출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젊은 작가들의 벤처 전략이 적중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전달하기위하여 인쇄물이나 홍보, 작품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스스로 해결해가는 전방위적인 경영전략을 구사하면서 TV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의 노출을 적절히 활용하였고, 일찍부터 이들을 눈여겨 본 광고전문가 찰스 사치에 의하여 광고에 출현하거나 채널 4에서는 터너 프라이즈 시상식을 중개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등 아티스트 마케팅 전략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입체적이고 효율적인 지원과 첨단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나아가 이를 사회적으로 접목시키게 되는 기성세대들의 파격적인 배려와 지원, 수요층의 의식을 꿰뚫는 명석한 판단은 오늘의 영국미술을 있게 한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한편 이들을 지원하면서 최근 20년간 영국현대미술을 지원하면서 신화를 창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찰스 사치, 앤서니 도페이, 제이 죠플링과 존 톰프슨Jon Thompson, 마이클 크레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등 골드스미스대학 교수진과 미술행정, 기획자들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또한 행정과 기획 분야에서 대표적인 인사로는 1988년부터 당연직으로 줄곧 터너 상 심사를 맡아 기간 멤버로 활동해온 데이트 갤러리 디렉터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 1946-)등이 신진작가들이 새로운 꿈을 실천해 가는데 결정적인 지원자가 된다.

 

  여기에 유명한 'Sensation'을 기획한 장본인 중의 한 사람인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의 노먼 로젠탈(Norman Rosenthal) 은 정부나 뮤지엄 등에서 꾸준히 신진작가들을 격려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방향을 모색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찰스 사치는 2003년 봄에 사치갤러리를 오픈하게 되었다. 현재의 갤러리는 런던의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로 손꼽힐 만한 정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91년에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일명 상어인 㰡rotting the art world㰡‘를 5만 파운드에 구입하였고, 1999년에는 트레시 에민의 㰡unmade bed㰡‘를 15만 파운드에 구입하는가 하면 yBa작가들, 특히 터너 프라이즈나 골드스미스 출신 작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후원자로서 대규모의 컬렉션을 한 인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소장된 창고가 2004년 5월 24일 화재로 5천만 파운드 정도의 손해를 입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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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와 형식을 뛰어넘는 교육의 변화

  최근 영국현대미술의 영광은 사실상 상위 몇 개 대학의 교육적인 공헌이 절대적이라도 보아도 좋을 것이다. 주요 대학의 교육적인 효과는 1988년 㰡프리즈전㰡‘에서도 나타나지만, 터너 프라이즈의 역대 최종 수상후보자 출신대학 분포에서도 상위권 5위 대학출신이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골드스미스가 23명으로 가장 압도적으로 많으며, 슬레이드가 11명, RCA가 8명, 첼시가 7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과거 미술대학의 역사나 졸업생 활동면에서 비교적 낮은 위치에 있었던 골드스미스가 1991년부터 1993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거의 복수 이상의 졸업생이 최종 후보에 선발되었다는 사실(24명 최종후보 진출, 5명 수상)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물론 단기간의 외부적인 성과만으로 오랜 기간의 특성화된 교육체계의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슬레이드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취적인 작업을 성격을, RCA가 비교적 정통적인 보수성을 강조하면서 현대적인 경향을 중심으로하는 이미지에 비하여, 골드스미스는 공격적이고 개념적 경향을 구사하는 대학으로 인식되면서 최근 들어 또 하나의 명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영국미술대학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가장 우선적인 변화는 전공개념의 새로운 인식이다. 골드스미스는 런던대학에 속해 있으며, 전공과정이 기존의 학과개념과는 달리 단지 Visual Arts, Fine Art로 명기되어있을 뿐 전공을 나누지 않는다. 교육프로그램 역시 매우 자유롭고,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사한다. 학부에서 나누어진 전공분야는 Fine Art, Fine Art and History of Art 로만 구분되며, 워크숍에서만 디지털미디어, 필름과 비디오, 순수예술판화, 사진, 금속과 주물, 목조 등으로 나누어 그 전문성을 부여하고 있다.

 

  골드스미스의 급부상은 교육과정의 개혁이 중요한 작용을 하였지만 일면에서는 대학원에 큐레이터, 미술사와 예술이론 등의 전공이 개설되면서 졸업 후 비평가, 큐레이터, 기자 등의 직업으로 배출된 동문들이 많은 활약을 한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시각이 있다. 여기에 학교교육에서도 실기와 이론을 동시에 섭렵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고, 상당시간을 철학이나 비평, 사회학, 큐레이팅 등의 분야를 병행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서 실기교육에 못지않은 작가로서의 견고한 이념적 바탕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다른 여러 대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결과 비평이나 기획전문가들을 배양하는 의미도 있지만 작가 스스로가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전시형태나 작업내용에 대한 보다 체감적인 현장을 맛보게 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슬레이드의 경우는 대학원에서 회화, 조각, 순수미디어, 비평학, 미술사와 예술이론 등이 있다. 학교명에서도 드러나지만 전 대학이 순수예술분야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시스템으로만 구성되어있다. RCA의 경우는 기존의 분류대로 순수분야에서는 회화, 사진, 판화, 조각을 나누고 여기에 현대미술 큐레이팅, 필름과 텔레비전 등이 추가되어있는 대학원 과정이 있다. 조각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대학으로 유명하다.

 

  방법적인 특징으로서 튜토리얼(tutorial)수업은 워크숍, 세미나 등과 함께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흥미를 존중하면서 보다 자유로운 사고로 시각예술이라는 제한된 영역을 넘어서 인문사회, 공학적인 차원으로까지 다양한 정보와 영역의 퓨전화를 유도한다. 2005년 RCA의 조소과 교직원의 구조를 보면 교수로서 학과장, 고급 튜터 , 주물전문 튜터 각 1명, 튜터 6명, 순수미술 튜터 1명, 초빙 강사 17명, 행정요원 1명으로 구성되어있다. 대학 전체로 보면 800명 학생에 행정인원과 테크니션(Technician) 등 전체 아카데미 스텝 1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골드스미스 경우는 통합적으로 개설하면서 다양한 튜토리얼 스텝(tutorial staff) 들에 의한 학생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창의성을 계발한다. 2005년 현재 교수진과 전임급의 강사진은 시각예술 전체가 29명이며, 초빙 튜터만 순수미술에서 학부, 대학원 전체를 포함하여 43명에 달한다. 중요한 것은 대학원 실기수업의 경우 국내와 같이 수업시간에 실기를 직접 실시하는 예는 조각이나 미디어의 일부, 기초실기 정도에 그치고 대다수는 자신이 작업을 해오는 결과물을 놓고 해당 튜터와 시간을 배정하여 작업의 모티브나 형식, 지향점, 기술적인 내용들에 대한 다양한 토론을 벌이게 된다. 때로는 개인 튜토리얼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자신의 작품을 놓고 튜터나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내면서 작품의 제작 의도나 지향점 등을 설명하고 토론을 통하여 평소 느끼지 못했던 논의들을 도출해 낸다.

 

  튜터는 각 학생 개개인의 성향을 분석하고 강의시간에 관련분야의 아티스트를 초대해서 그 작가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자기 작품의 프레젠테이션을 주도하여 객관성을 담보하는 교육효과를 창출한다. 이 과정에서 교수는 권위보다는 선배작가로서, 평론가로서 그 학생의 수준과 관심에 적합한 책이나 작가를 소개하거나 전시를 추천하는 등 철저한 학생중심교육을 하고 있다.

 

  더욱이 교수진 이외에도 대다수의 대학에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문가들인 테크니션들이 있어서, 작품을 하다가 오브제를 만들어야 하거나 전자제품이나 컴퓨터의 복잡한 회로 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전문가들과 쉽게 상의하고 해결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에서 교수, 학생, 테크니션 3자가 매주 1시간 넘게 회의를 진행하면서 작품의 내용적 보완 이외에도 기획이나 기술적 보완, 안전사항점검, 나아가서는 작품제작이나 디스플레이에 그치지 않고 전시홍보나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스폰서쉽 등 마케팅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점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방학 중에도 지속적으로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학생들의 이러한 열의와 자세를 바탕으로 하여 교수의 연구실을 편한 마음으로 노크하는 분위기를 창출한다. 교수와 학생간의 밀접한 관계는 1992년 RCA에서 유학을 하던 한국학생이 입시 면접시험에 교수와 동일하게 위원으로 참가했다는 사실에서 강의 시와 별개로 때로는 동료예술가로서의 평등관계로 변화한다.

현장과 직결된 움직이는 교육

  현장과의 연계성은 다양한 사고를 지원하고 자생적인 논리를 견고히 하며, 정보획득을 위한 자료제공, 작품의 컬렉션을 통한 시각적인 교육자료 구축, 장학혜택의 확대 등이 바로 핵심이다. 이에 대하여는 골드스미스가 약 250,000권의 소장도서와 전자저널을 포함하여 1,700종의 저널을 보유하고 있다. 오디오, 비주얼 자료들을 확보하여 컴퓨터를 통한 학생들의 작업환경을 구축하였으며, 인문학분야나 종합도서는 런던대학에서 자료를 지원하고 있다.

  RCA는 자체 컬렉션만 1920년대부터 1,000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시설은 헨리무어 갤러리 등 여러 개를 보유하고 있다. 슬레이드는 150만 파운드의 예산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여 연구와 교육의 하부구조를 견고히 하고 있는데, 대형 디지털 스튜디오와 워크숍스튜디오 등을 확보하게 되면서 최근 상승세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23개의 신입생, 재학생, 졸업생을 위한 장학제도와 상금제도 등이 운영되고 있다.

  왕립예술원에서는 2005년도 제 237회 여름전시가 6월 7일부터 8월 15일까지 개최되었다. 1768년부터 매년 개최되어 이미 237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회화와 조각, 드로잉과 판화, 건축모형 등이 출품되며, 이 전시에만 약 7만 파운드의 상금이 수여되고, 도록을 제작한다. 이번 전시 역시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판화나 사진의 경우는 한 작품에 수 십장이 매진될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특히 이 전시는 왕립예술원 미술대학원 졸업전과 동시에 개최되어 더욱 성황을 이루었으며, 졸업전 역시 많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구입하여 자연스럽게 사회에 진출하는 예비작가들의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한편 매년 6월 경 개최되는 각 대학의 졸업전에는 적지 않은 작가, 평론가, 상업갤러리, 뮤지엄의 큐레이터나 디렉터, 컬렉터, 애호가들이 다녀가면서 연락처를 남기고 전시섭외나 작품구입에 대한 상담을 하는 예가 허다하다. 졸업전은 거의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며, 오픈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성황을 이루는 예가 많다. 오프닝에는 영국미술계 유명갤러리 , 뮤지엄의 디렉터, 큐레이터 등과 작가, 평론가, 컬렉터 등이 초대되며, 유럽 전역의 주요인사 수천 명에게 초대장이 발송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한다. 그렇게 되니 결국 행정을 책임지는 학장이나 교수들은 이들을 졸업전에 초대하여 보다 많은 졸업생들에게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되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선택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게 된다.

  물론 영국의 순수미술 분야 역시 졸업생들이 증가함으로서 점차 취업과 생계대책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교하여 소수로 정예화 된 학생수와 폭넓은 수요층에 기반을 두어 과반수에 가까운 학생들이 작가로서 당당히 성장해가고 있다.  대학에서도 졸업생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배려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정규과정에서 갤러리를 상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나 큐레이터에 전시를 신청하거나 작품을 거래하는 간단한 절차, 전시개최에 따른 서류작성, 제반과정 등에 대하여 교육함으로서 졸업전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일이 상당히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학당국은 각계각층의 미술계 인사들 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강연을 개최하고 토론을 벌이는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학생들의 현장적응력을 강화하게 된다. 이 같은 인식은 대학 내에서만 노력하는 것은 아니며 학생들을 격려하려는 사회적인 노력도 동시에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로서 첼시미술디자인대학이 올해 1월에 밀뱅크로 이사를 하면서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테이트 브리튼에서는 대학의 이전을 환영하는 학생들의 전시회를 개최해 줌으로서 거리감을 느끼는 뮤지엄의 권위보다는 학생들을 격려하는 동반자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또 다른 예로서 교육과 현장의 직접적인 연계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는 대표적으로 크리스티와 소더비 교육과정이 꼽히는데, 세계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 런던 크리스티교육과정은 스코틀랜드의 가장 오래된 글레스고우 대학과 런던대학에서 경매회사와 산학연계시스템으로 교육을 실시하여 각각 정해진 과정을 이수함으로서 해당학위를 취득하는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 영국의 미술대학은 이미 입학과정에서부터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미술대학에 진학하려면 다른 인문대학과 커다란 차이가 없는 수준의 학습능력을 지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미술 분야에 대한 분명한 진로를 선택한 학생들의 경우만이 가능하겠지만 그만큼 우수한 인재들이 예술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고, 대학은 철저하게 이들에 대한 서비스와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1984년 터너 프라이즈가 시작될 무렵 영국의 사회적인 상황은 이미 1979년 㰡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㰡‘로 불리울 정도였다. 노조운동과 파업이 만연하는 등 전 국민에게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대처수상(1979-1990)의 정치적 역량이 발휘되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미 상당부분이 회복세로 돌아섰고,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1987년 인플레율은 3.7%, 경제성장률은 4.25%로 호전되었으며, 1988년에는 140억 파운드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호황으로 반전되어갔다.

 

  마가렛 대처정부는 줄곧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대처리즘의 영국식 대중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로 이어지면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과 민간의 자유 활동을 중시하는 머니터리즘(monetarism)을 전개한다. 이로서 상당수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혁신을 추구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터너 프라이즈나 1988년 프리즈전이 열렸고, 기업과 연계된 yBa작가들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다. 한편 1997년 대선 전략에서도 영국 토니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에 의하면, 1997년 대선 준비 기간 중 당 기본강령의 하나는 㰡개개의 시민들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찾아야 한다.㰡‘는 것이었다. 이 의제에 관련해서 예술은 깊은 관계가 있다. 예술 분야는 정부가 부가적으로 생각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과제 중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총선승리 후에도 예술은 일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반인들이 미술에 관심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나아가 예술이 문명화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 아래 영국 노동당 정부는 각 지역 공동체 깊숙이 관여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 1998년에 DCMS는 새로운 역할을 규정하였다. 이를 ‘New Cultural Framework(신 문화구조)’라 한다. 여기에는 문화정책, 문화기금과 관련한 복잡한 구조 속에서 DCMS에 대한 보다 전략적인 위치의 확보, DCMS와 이를 보조하는 기관과의 상호관계유지 등이 논의되었다. 한편 1990년대 후반 영국정부는 㰡Creative Industries㰡‘, 즉 창조적인 산업을 외친 노동당 정권에 의하여 문화예술이 단순히 㰡고도의 지적 감성산업㰡‘으로서 순수예술을 넘어서서 패션, 영화, 게임 등 문화산업분야까지 폭넓은 지원과 발전이 이루어져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게 되었고, 문화예술을 대중으로 확산하는 다양한 전략이 제공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최근 예술위원회에서 실시한 'Own Art with a 0% loan', 즉 0% 이자율로 미술품 구입비용을 융자하는 지원제도이다. 이는 전국 250개 갤러리에서 2004년 말에 시작되어 서민층까지 쉽게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미술진흥은 물론 국민들의 문화 향수권 신장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제도는 2005년 봄부터 미술대학들의 졸업전시에도 적용된다는 뉴스가 새롭게 추가되면서 2단계 서비스로 진입하고 있다. 이는 기성미술시장이 아닌 이제 초보적인 작가들의 작품구입에도 기회를 부여함으로서 가장 최근의 신선한 감각을 지닌 예비 작가들의 창작환경을 진작시킨다는 점에서도 환영받고 있다. 올 해는 윔블던 예술대학과 로열 아카데미 등 3곳에서 시행되었고, 2006년에는 전국의 25여개 이상의 대학에서 신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국민들을 위한 강연회나 워크숍 등을 비롯하여 1998년 감상자 개발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특별기금 설립 등을 서두르게 되고, 2001년 전국의 뮤지엄들은 입장료를 폐지하게 된다. 그 결과 뮤지엄의 입장객수가 대중문화 수준을 앞지르게 되고, 소수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문화예술, 특히 미술 분야가 급속도로 국민 곁으로 다가서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국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많은 국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게 된다. 전국의 뮤지엄들을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도를 시행하면서 복권기금으로 발틱(Baltic)을 건립하는 일이었다. 2002년 7월에 개관되었으며, 1950년대의 곡물창고(예전의 발틱 밀가루공장의 한 부분)에서 뮤지엄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는 수입기금으로 제공한 첫 번째 로터리 복권기금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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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 프로젝트에 소요된 총 경비는 한화 약 851억 정도이다. 이 중 한화 약 622억 원은 영국예술위원회를 통해 로터리보조금으로 충당되었다. 1998년에 출범한 국립복권기금(National Lottery Fund)은 문화예술지원의 절대적인 후원제도로 각광받고 있다.

 

  영국의 국가지원제도는 작품구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1935년부터 정부는 기존의 구입활동에 해외 공관용 작품 구입 활동을 추가시켜 예산을 별도로 지정하였다. 1947년부터는 정부가 직접 상업화랑을 통해 작품을 구매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왕립미술원에서 매년 여름에 개최하는 전시회를 통해 우수한 작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영국의 작품구입제도는 크게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예술위원회 컬렉션, 정부 미술품컬렉션(GAC: the Government Art Collection)으로 나뉘며, 크게 보면 모두 국가가 작품을 구입하여 소장하고 이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전시나 설치를 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약간씩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제도로 인하여 영국은 국가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해외에 영국의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정기적으로 구입해줌으로서 창작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입체적인 효과를 거두어오고 있다.

 

  영국문화원은 적어도 60년 이상 영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 세계로 알리기 위하여 순수미술은 물론, 공예, 디자인의 작품들을 수집해 오고 있다. 켈렉션은 1930년 후반에 시작되어 현재 8천 점 이상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2001 ARCO에서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한 컬렉션 작품들은 109개국의 해외 공관과 국내에서 전시, 설치되며, 순회전시에도 사용된다.

 

  예술위원회 컬렉션은 1946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소장품의 대여는 컬렉션의 주요 사업이다. 그 목적은 현대 및 동시대 영국미술을 가능한 전국 여러 곳에서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헤이워드갤러리(Hayward Gallery)는 ACE를 대신하여 공간을 확보하고 전시와 소장기능, 일부 기획기능을 동시에 구사하게 된다. 1968년에 설립되었고 현재는 런던의 사우스 뱅크 센터에 있으며, 7,400점 이상의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프란시스 베이컨, 루시앙 프로이드, 헨리 무어와 같이 저명한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작품구입 또한 중요한 업무이다. 데미안 허스트, 크리스 오필리와 같은 터너 프라이즈 수상자들이 이에 속한다. 전시형태는 장기대여, 전시대여. 국립순회전시 프로그램으로 나뉘며, 지원대상은 각 대학, 지방정부청사, 자선단체, 도서관, 병원 등이 포함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최근 영국 현대미술의 주역으로 각광받은 터너 상 수상자들과 yBa작가들이 다양하게 포함된다.

 

  또한 영국의 많은 미술품이 기증제도에 의하여 뮤지엄이나 컬렉션에 소장되는 예가 많은데, 예술위원회 컬렉션 역시 찰스 사치의 기증을 통해 많은 작품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1999년, 컬렉터인 찰스 사치는 예술위원회 컬렉션에 100여 점의 작품을 기부하였다.

 

   정부 미술품컬렉션은 DCMS에 영국의 문화예술을 고양시키기 위하여 설치된 기구로서 국내외의 공공기관에 설치하거나 전시한다. 1898년부터 컬렉션이 시작되어 약 12,000점 정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된 작품들은 런던의 다우닝가와 전국의 정부 공공건물, 특히나 해외에 설치된 대사관과 외교 관련 기구에 많이 설치되어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각 뮤지엄들에게 대여전시도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정부가 국민과 작가들을 위해 담당해야 할 문화 인프라구축과 지원제도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다.

 

마케팅의 새로운 패러다임-기업의 참여

  대처정부 시절의 특징은 적지 않은 기업 자본들이 시각미술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영국에서 공공정책과 기업지원사이의 관계는 아주 밀접했기 때문에 기업예술지원연합(ABSA)의 회장인 콜린 트위디(Colin Tweedy)는 이러한 기업의 지원이 㰡대처리즘(Thatcherism)의 초석㰡‘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적어도 보수당이 집권한 1979년 이전에는 미국과 비교하여 영국에서 미술관을 지원하는 기업의 수는 상당이 적었다. 하지만 이후 중앙 및 지방정부의 차원에서 미술관을 직접 또는 적절하게 지원하였다. 1980년대를 통틀어 영국 보수당 정부는 미국식 기업문화를 모방하는데 크게 성공하였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미술관은 대중 속에 있는 기업의 또 다른 전초기지가 되었다. 예를 들어 왕립예술원과 페스티벌 홀의 뜰이 자신들을 지원하는 일본의 도요타 렉서스 자동차와 같은 기업의 상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청년작가들의 상당부분이 눈부신 활약을 하고, 세계화단으로의 진출이 가능했던 것은 많은 기업들이 뮤지엄이나 작가들의 전시에 기부금을 희사하고 자신들의 상업적인 광고내용을 부착하면서 이미지홍보를 시작하게된 것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스타가 되기 이전에는 전시공간이나 간단한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의 협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결정적인 도움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대학원정도의 학생이 전시를 준비하는데 전화기를 매체로 한 전시를 한다고 하면, 전화국이나 통신회사를 어떻게 섭외하고 그 섭외를 위하여 어떠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교수진은 구체적인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추천서를 써주면서 학생이 직접 발로 뛰어 후원금을 확보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한다. 그 결과는 어느 때는 현금으로 지원되지만, 어느 때는 직접 전화기를 지원한다든가, 작가가 필요한 전선줄을 지원하는 등의 현물로 지원된다.

 

세계 2위의 미술시장

  영국의 현대미술이 짧은 시간에 적지 않은 세계적 작가들을 길러내고, 신화라고 할 만큼의 다양한 스타를 만들어내는 것은 역시 미술시장의 파워가 막대한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0년에서 2001년 영국의 딜러 판매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리차드 그린그룹으로서 무려 한화 약 1990억 원 정도에 이른다. 이밖에도 디킨슨 로우넬, 에스케나지 등 세계적인 딜러들의 최소 수백억 이상의 판매수치는 영국의 미술시장이 얼마만큼 급성장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예이다.

 

  미술품매매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이 종사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영국에서 가장 큰 단일 외화수입원이 되었다. 런던은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본산지로 인식되고 있고, 특히나 크리스티의 본부가 위치하여 국제적인 시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상업갤러리는 런던을 중심으로 분포되어있는데 리슨, 화이트 큐브, 가고시안, 빅토리아 미로 등 500여개가 런던에 집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콕 스트리트에는 대표적인 상업 갤러리들이 몰려있으면서 활발한 전시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등 중심가를 이룬다. 헉스톤 스퀘어에는 화이트 큐브를 비롯한 갤러리들이 위치하며 조금 외곽에 있다. 이들의 각각 운영 방식들이 확연히 다르고 총 판매액, 조직능력, 프로그램 형태, 주식, 시장에서의 위치에 따라서도 특성이 달라진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한다면 1990년대 이후 영국에서 가장 빠르고 규모있게 성장한 화이트 큐브를 꼽을 수 있다. 이 갤러리를 오픈한 제이 죠프링(Jay Jopling1963- )은 1991년, 차세대의 주자로 떠오르는 데미안 허스트와 우호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1993년에 죠프링은 런던에서 이 블루칩 갤러리를 개관한다. 4.5리터의 자신의 피를 이용해 작품을 하여 유명해진 마크 퀸(Marc Quinn1964- )이나, 자신의 부인 샘테일러 우드, 길버트엔 조지, 안토니 곰니 등 다수의 yBa작가들이 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한다.

 

  한편 가장 대표적인 아트페어는 떠오르는 별 프리즈아트페어이며, 2003년에 1회를 개최한 후 2004년에는 참여 화랑수가 140개로 증가하였고, 작가들도 두 배가 많은 2,000여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 세계에서 신청한 400여 개에서 선별되며, 관람객 수도 2004년에는 4만명을 기록하였으며, 2003년에는 2천만 파운드(한화 약 400억 원)를 상회하는 판매고를 기록하여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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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의한 국민의 예술

영국의 미술지원제도가 아무리 다양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사실상 국민들이나 기업의 문화인식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오늘과 같은 역동성 있는 현대미술의 수준과 환경을 이끌어내기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2001년부터 실시된 모든 뮤지엄의 관람을 무료로 개방하면서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는 기부함과 뮤지엄 멤버십, 후원회의 운영을 위한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다. 전시회마다 기업이나 언론이 홍보하고 어느 경우는 뮤지엄의 후원회가 회비를 걷어 직접 지원을 담당한다. 이러한 영국의 시스템에서 가장 돋보이는 후원단체가 있다. 바로 국립미술품컬렉션기금(약칭:Art Fun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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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Art has the power to transform people's lives)'라고 말하는 이 기구는 매년 상금의 수 백만 파운드를 모금하여 언제라도 영국으로부터 외국으로 팔려나갈지도 모르거나 개인 컬렉션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예술품을 구입하도록 전국의 주요 뮤지엄과 갤러리에게 지원되어진다. 아트펀드는 회원들의 모금으로 1903년 이후 약 85만 점의 작품들이 구입하였고 이 작품들은 여러 형태로 공공적으로 컬렉션 되고 있다.

 

  회비는 1기니부터 시작하여, 최근에는 28 파운드부터 아트펀드에 참여할 수 있다. 전체 회원은 8천 명에 달하며, 기금의 기부와 함께 전국 200개소의 뮤지엄과 역사적인 유적지를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특혜가 부여된다. 이 기구를 통하여 영국의 문화재를 지켜내려는 노력에 대한 감동적인 일화는 너무나 많다. 그들은 이미 1906년에 외국으로 팔려갈 운명에 있던 디에고 벨라스케이스(1599-1660)의'화장실의 비너스(1648-1651)'를 지키기 위해서 처음으로 국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필사적인 모금운동을 벌인 끝에 45,000 파운드가 모아졌고,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의 컬렉션이 가능해졌다. 그 돈은 당시 내셔널 갤러리의 1년간 작품 구입 총액의 9배에 이르는 거금이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컬렉션 된 작품들은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 등에 소장되어있으며, 피카소, 보티첼리 등 다양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국가적 차원의 지원시스템, 국민들의 의식구조, 합리적인 대학교육과 역동적인 미술시장 등에서 비롯된 인프라구조를 바탕으로 탄생한 적지않은 신예스타들의 탄생과 세계적인 활동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입체적인 작품으로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5백만 명의 저변 소장층을 확보하고 있는 범국민적 미술품 애호층과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유도하는 국가적인'신문화구조'전략과 함께 이제 진정한 선진국이 갖는 문화만족도란 무엇인지를 시사하고 있다. 아울러 영국 현대미술의 놀라운 변화는'21세기의 해가지지 않는 문화대국'으로 인식되면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고, 또 모범적인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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